지난해 코로나19가 바꾼 법원 풍경 중 하나는 잦은 휴정이었다. 감염병 확산세가 심각해질 때마다 법원이 멈춰서면서 길게는 몇 달씩 재판이 지연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원격 영상재판’이 올해 본격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지난해 영상재판을 주로 실시했던 서울고법은 해당 제도에 대한 변호사들 의견을 듣고, 실제 영상재판이 가능한 영상재판실 설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영상 재판 활용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7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전산위원회(위원장 부장판사 권순형)는 조만간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영상재판 관련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판사와 변호사, 법원 직원들이 모의 영상재판을 경험해볼 수 있는 영상재판실 설치도 고려 중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고법 소속 판사들에게 영상재판 안내 자료와 새로 도입된 영상재판 프로그램 매뉴얼도 배포했다.
영상재판 자체가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1995년 특례법 제정으로 일부 사건에 제한적으로 영상재판 실시가 가능해졌지만 사실상 이용이 전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코로나19 여파로 민사소송규칙이 개정되면서 변론준비기일의 영상재판이 가능해졌다. 원고·피고의 대리인은 각자의 사무실에서, 판사는 법정 혹은 판사실에서 화상 카메라를 켜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활용도는 미미했다. 법원에 따르면 올 초 법관 4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영상재판 관련 설문조사에서 74.2%는 영상재판을 실시해본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영상재판을 경험해본 한 변호사는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한 측면이 있었는데, 그때 영상재판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고 1년간 다시 영상재판을 할 일이 없었다”며 낮은 활용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해외에서는 영상재판을 활발히 이용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형사사건에 대한 영상재판 근거규정이 신설됐다. 텍사스 형사 항소 법원은 원격으로 진행한 영상 재판을 유튜브에 게시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원격으로 민사소송의 당사자 신문을 할 수 있었던 독일 사례도 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형사·민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영상재판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개정안은 민사소송의 변론기일, 형사소송의 공판준비기일까지 영상재판의 이용 범위를 넓혔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리인이 오가는 시간이 줄고, 법정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어 더 충실한 심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현중 전 사법정책연구원장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도 변론할 기회를 주는 것은 사법부가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서비스”라며 “국민이 많이 활용하는 조정 절차부터라도 적극 도입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부적절한 법률 조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상의 외부 유출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시각도 있다. 강 전 원장은 “영상재판이 확대돼도 이를 따로 촬영하거나 외부에 공개하는 행위 등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