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애견 미용 실습견들의 처참한 실태가 공유되면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 농장 번식견들이 비임신 기간에 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개 농장 번식견들이 비임신 기간에 애견 미용 실습견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애견 미용학원에서 미숙한 학생들을 상대로 (번식견들이) 몸을 내준다”고 밝혔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너무 속상하고 화나고 눈물만 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저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을까” “동물이 물건도 아닌데 저런 식으로 다루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다치면 다친 대로 놔둬라”…결국 미용학원을 그만뒀다
A씨는 지난해 9월 모 애견 미용학원에 다니다 서너 달 만에 그만뒀다. 애견 미용 실습 이면에 자리 잡은 농장견과 상주견(상점이나 시설 등에 상주하는 개)의 고통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애견 미용학원에 농장견과 상주견이 실습견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세 다리 아이에게 똑바로 안 선다고 윽박지르고, 얼굴을 슬리커 브러시(로) 사정없이 빗겨 피가 줄줄 흐르는 거 보고 강사는 그럴 수 있다고, 아주 심한 정도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용학원 수강생의 태도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A씨는 “뜻대로 안 된다고 몰래 살을 꼬집고 비틀어 (실습견 몸에) 멍 들여놓은 수강생도 봤다”며 “처음에는 수군수군하더니 나중엔 죄책감 없이 아이들을 다뤘다”고 밝혔다.
이어 아픈 개들을 실습견 삼아 미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종양이 다리만큼 커져 서기도 힘든 아이(를) 무조건 세워서 미용하라고 했다”며 “눈 속이 다 찢어져 실명한 아이, 혀가 잘린 아이, 가위에 살이 파인 데(를) 또 파여서 한참을 눈물짓게 하던 아이, 생각하면 오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또 한겨울에 찬물로 강아지를 목욕시키기도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추운 1월에도 (대부분의 실습견은) 찬물 목욕을 해야 한다”며 “여긴 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놔서 가만히 있어도 추운 곳이다. (이곳에서 실습견들은) 5분이고 10분이고 찬 샤워기를 몸에 붙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A씨는 “학원을 갈 때 오늘은 어떤 미용을 배울까가 아니라 오늘 어떤 더 불쌍한 아이를 만날까 두려운 곳이 미용학원”이라며 “피 나는 아이 약 발라주는 것도 못 했다. 다치면 다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대로 놔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매일 가슴이 무너졌고 눈물을 쏟아냈다”며 “꼬리가 아예 없어서인지 항문에 상처가 나서 심하게 부어 있어 상비약을 사람들 눈 피해 몰래 발라줬고 심장 떨려가면서 사진을 찍어 댔다”고 전했다. 그는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다는 그곳에서 (개들을) 살려서 데리고 나오고 싶다”고 호소했다.
작은 움직임…자격시험 시 모형견 사용
실제 SNS상에서 일부 애견 미용학원이 실습견 관리에 소홀하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볼 수 있다.
충무로에 있는 다른 애견 미용학원에 다니다 중도 포기했다는 네티즌 B씨는 실습견들을 ‘산 마네킹’이라고 표현했다. B씨는 “말 안 듣는 애들 목 부분을 눌러서 움직이지 않는 반송장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미용한다”며 “수강생 중 일부는 애들을 물건 다루듯이 하고, (한 수강생은) 미용 연습하다 모유수유하는 아이 젖을 가위로 잘라놓고 미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학원생들이 가위나 클리퍼(이발 기계)를 사용하다 실습견이 다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 사례도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용시험에 동원되는 실습견들이 시험 때 배설할까봐 전날부터 밥을 먹이지 않거나 시험이 열리는 장소로 수시간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최근 업계에서는 자격시험 시 모형견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애견협회는 2016년부터 ‘위그’라고 불리는 모형견으로 자격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애견협회 관계자는 “전염병이나 실습견 이동 문제 등 과거 실습견으로 시험을 진행할 당시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모형견을 사용하면 자격시험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동물 복지도 증진된다”고 말했다.
다만 애견 모형만으로 모든 실습을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기본기를 갖추고 난 이후 실습견을 상대로 미용 연습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실습견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아픈 개를 데리고 실습하는 것 등은 학대로 볼 수 있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의 사각지대…"미용 학원 관리 시스템 만들어져야"
현행 동물보호법에는 미용 실습견에 관련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별표 10에 따르면 동물 미용업자는 동물의 건강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설 및 설비를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 미용학원은 사업장이 아닌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동물 미용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실제 개를) 실습으로 사용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실습견 관리 등) 관련된 정확한 규정이 없다”며 “다만 이유 없이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학대이며,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는 등 적절한 사육관리를 하지 않으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애견 미용)학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관련 협회를 통해 적절히 관리되고 있는지, 관리지침이 있는지 체크하라고 연락한 적 있다”며 “동물보호법 안에는 동물을 적절하게 사육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업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사육관리할 때 생명이나 안전을 기본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동물단체들은 법적으로 실습견 관리 및 복지에 대한 지침과 매뉴얼을 하루빨리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케어의 김영환 대표는 “(동물 미용학원이) 동물보호법 내에 포함돼야 하며 이를 감독·감시하는 시스템도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동물학대가 발생하기 쉬운 곳에는 정기적으로 감사를 나가는 시스템이 동물보호법에 내재화돼야 법의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