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때 예선탈락 하고 나서 핸드볼 꿈나무들 30%가 그만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올림픽 성적 영향이 크긴 크구나,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책임도 생각하게 됐고.”
세 번째 올림픽 준비를 하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심해인(34)의 어깨는 무겁다. 그를 비롯해 주장 류은희 등 대표팀 최고참급 선수들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이른바 ‘우생순’ 신화를 TV 중계로 보고 자란 세대다. 특히나 2010년대 들어 런던올림픽, 리우올림픽에서 연달아 메달권에 들지 못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번 올림픽의 의미는 크다. 올림픽 성적이 한국 핸드볼에, 또 다음 세대 후배들에게 미칠 영향을 알고 있어서다.
대표팀은 지난달 중순 선수촌에 소집됐지만 이후 코로나19 탓에 소집 해제됐다. 다시 모인 건 지난 3일이 되어서다. 훈련한 시간을 다 합쳐도 인터뷰한 날까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20일까지 고강도 웨이트, 재활 훈련을 거친 뒤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연습 경기를 하며 감각을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진천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대표팀 선수들과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올림픽 진출 확정, 그 후 2년
대표팀은 2019년 9월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5전 전승으로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을 이뤄냈다. 핸드볼 종목에서 세계 유일한 사례다. 그러나 경사 뒤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선수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골키퍼 박새영(26)은 “선수촌에 입소했다가 뉴스에서 먼저 소식을 들었다. 팀 미팅에서 퇴촌 통보를 받아 짐을 쌌던 게 기억난다”면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무관중으로 리그가 진행된 지난 시즌은 고됐다. 박새영은 “시즌 중 소속팀 숙소를 폐쇄했다. 훈련 때마다 선수들을 불러모아 훈련을 하다 보니 평소만큼 연습할 수 없었다”면서 “공을 체육관에서 많이 못 만지니 감각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심해인은 “저희 팀은 시즌 도중 외부 식당도 사용하지 않고 숙소 안에서 도시락만 먹었다”면서 “유난히 정신적으로 더 힘든 시즌이었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핸드볼 강국이 모인 유럽에 두어 번은 나가 연습경기를 치렀겠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탓에 유럽에 갈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다. 대표팀은 유럽 팀을 대비하기 위해 신체적으로 강한 남자 선수들과 경기를 계획하고 있다. 최종명단이 확정되는 건 6월 말이다. 강재원 감독은 “이번에 명단에 들어간 21명 외에도 선수풀 40명 정도를 염두에 놓고 있다”면서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 훈련을 잘 따라오는지, 유럽 선수들과 겨뤄 경쟁력이 있을지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 훈련 강도는 프로 구단 수준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수준이다. 웨이트와 재활에 치중할 20일까지의 훈련 이후에는 그보다 더한 초고강도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단 강경민(24)은 “이미 평소 하는 훈련의 5배 이상 힘들다”면서 “일단 최선을 다해 따라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강재원 감독은 “대표팀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헝그리 정신’을 선수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시대”라면서 “결국 가장 절박한 선수가 팀에 남아서 올림픽에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강해진 상대들
한국 여자 핸드볼은 여전히 강하지만 세계 무대는 갈수록 어렵다.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성적은 11위, 2017년 같은 대회에서는 13위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든 걸 생각하면 위기라 할만하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 예선 탈락은 ‘리우 쇼크’로까지 불렸다. 1990년대 제왕으로 군림한 한국 여자 핸드볼이지만, 올림픽마다 국내에서 반짝 몰리는 관심만으로 세계 무대 왕좌를 지키는 건 무리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 조 예선에서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를 비롯해 개최국 일본과 앙골라, 몬테네그로와 A조에 편성됐다. A조 6개 국가 중 상위 4팀 안에 들면 순위에 따라 B조 상위 4개 팀과 8강 대진이 결정된다. 강재원 대표팀 감독은 “일단 노르웨이와의 1차전, 네덜란드와의 2차전 중 최소 하나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8강 좋은 자리에 선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림픽은 대륙별 최고의 팀이 나오는 자리다. 누가 약하다 얘기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조 국가 중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국 네덜란드는 물론 노르웨이 역시 막강하다. 대표팀은 2019년 세계선수권 대회 본선에서 두 국가를 연달아 상대했지만 모두 패했다. 심해인은 “네덜란드는 2017년에 이겨본 적이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상대해보니) 스피드가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박새영은 “골키퍼 입장에서 유럽 선수들은 신장이 크다 보니 슛 타점이 높다. 상대할 때 ‘내 키가 더 컸더라면’ 생각도 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끝난 유럽선수권대회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미리 상대 선수들을 연구하고 있다.
칼을 갈고 나올 일본과의 승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대표팀은 여태 일본에 진 적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생기는 부담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설사 8강에 들지 못하더라도 아시아 최강 한국을 이긴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박새영은 “일본은 이겨야 하는 팀이지만 당연히 이긴다 생각하면 안 되는 팀이다. 우리를 잡아보려고 애쓰는 게 보인다”면서 “여유 있는 경기를 하려면 일찌감치 골 차이를 벌려놓는 게 좋다. 방심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또는 처음
성인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센터백 강경민에게 이번 소집은 낯선 도전이다. 그는 “고교 시절과 스무살 초반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를 나간 적이 있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진천선수촌도 그렇고 다 처음 접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무대 경험은 적지만 국내 정규리그 득점왕이자 2시즌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이미 명성이 높다. 그같은 어린 선수들의 국제무대 성공 여부는 대표팀 세대 교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장기인 타이밍을 뺏는 슈팅과 돌파력이 세계적인 강팀에도 통할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다.
진천 선수촌에 이미 여러 번 입소한 골키퍼 박새영에게도 올림픽은 이번이 처음이다. 3시즌 연속 국내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그지만 대회 내내 태극마크를 달고 비중있게 뛰어본 건 몇 차례 되지 않는다. 그는 목표를 묻자 “당연히 금메달”이라며 웃은 뒤 “일단 목표를 크게 잡되 한 경기 한 경기를 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뛰려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막아줘야 될 공은 다 막고, 팀이 어려울 때도 하나씩 막아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각오를 말했다.
팀내 최고참인 레프트백 심해인은 처음 나간 런던올림픽 당시 부상을 당해 팀이 코앞에서 메달을 놓치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이번 소집에도 손발을 오래 맞춰온 센터백 김온아가 부상 위험 탓에 합류하지 못했다. 심해인은 “은희(류은희)처럼 대표팀 또래 선수들과는 이번이 같이 뛸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지 않을까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마지막이니만큼 꼭 메달을 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 편성을 보며 ‘아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배들과는 할 수 없는 얘기다. 선배로서 져야 하는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중고참으로 나섰던 리우올림픽 당시 조별예선에서 탈락해 엄청난 양의 비난을 받았던 기억을 돌이키기도 했다. 평소 사람들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던 핸드볼 선수로서 그런 비난이 더 서럽게 느껴질만도 했다. 그는 “핸드볼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올림픽 때에서야 잠시 빛을 보는 종목인 게 사실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올림픽 자체가 평생 땀흘리고 노력한 걸 펼치는 무대”라면서 “너무 많은 비방보다는 응원과 칭찬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고픈 건 한국 핸드볼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어릴 적 ‘우생순’을 보며 그랬듯, 이번 올림픽을 보며 성장할 어린 후배들이 앞날에 희망과 꿈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심해인은 “‘라떼’ 타령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예전에 비한다면 국내에서 핸드볼을 둘러싼 환경과 대우는 많이 좋아졌다. 열심히 하면 충분히 부나 명예도 따라온다”면서 “제발 그만두지 말고 열심히 끝까지 파이팅 해달라”고 어린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