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봄인데… 꽃구경 대신 색칠공부하는 어르신들

입력 2021-04-05 18:07
경로당이 문을 닫아 공원에 모인 노인들이 지난해 8월 광주의 한 공원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으면서 외출할 기회를 잃어버린 어르신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1년에 몇 차례 가졌던 가족 나들이는 없어졌고, 봄철마다 경로당 등 각종 시설에서 진행했던 ‘꽃놀이’도 올해는 모두 취소돼 흘러가는 계절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6시 인천 동구의 한 아파트 현관에서 만난 할머니 세 분은 토요일마다 학습지를 가져오는 치매 예방 교육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40분이나 일찍 나와 기다렸건만 할머니들은 ‘이번 주는 강사 방문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관에 서 있던 시간이 이날 첫 외출이었다는 박모 할머니는 새로운 색칠 그림을 받지 못해 아쉬워했다. 박 할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경로당에서 다 같이 꽃구경을 가곤 했지만, 이제 꽃구경은 색칠공부로 하는 게 전부”라며 “선생님한테 매번 더 달라고 부탁해서 다른 색깔로 여러 번 칠해보곤 한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핸드폰을 꺼내 그동안 칠했던 꽃 그림들을 보여줬다. 특히 호접란을 사인펜으로 칠하다 보니 분홍빛이 너무 짙어졌다며 아쉬워했다. 꽃들이 외로워 보인다며 노란 나비를 직접 그려 넣기도 했다. 경로당이 문을 닫으면서 박 할머니는 하루 종일 집에서 TV를 보다 30분 정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일상이 됐다.

지난 4일 오후 자목련이 활짝 핀 서울 용산구의 한 경로당 근처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들은 경로당 인근 공원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 아이들이 밤나무에 매달려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모(73) 할머니는 “올해도 꽃구경을 못 갔다”면서 “여기 앉아 동네에 핀 꽃을 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봄이 되면 여기저기 잘 놀러 다녔는데, 작년부터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이 동네 어르신들은 오후 2시가 되면 경로당 옆 공원에 나와 자리를 잡는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아이들의 노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사회적·인지적 자극에 꾸준히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의 네트워크마저 끊기면서 정신 건강이 악화된 노인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관계자는 “노인들의 유일한 소통 공간인 경로당 문을 무작정 닫아선 안 된다”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