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밖 부동산공약 내세우는 여야 후보…“대통령도 힘든 공약인데”

입력 2021-04-05 17:59

4·7 재보궐선거에 나선 여야 서울시장 후보들이 일제히 부동산 공급 확대, 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있다. 특히 선거 국면이 과열되고, 부동산 민심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양당의 절박함이 더해지면서 이같은 공약들이 분출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지방정부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야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서울시장 취임과 동시에 당장 재개발·재건축 등 공급 확대에 나설 것처럼 공언하고 있으나 중앙정부 권한이거나 정부와 협의가 필수적인 사안이고, 입법사안도 많은 게 현실이어서 결국 시장의 투기욕망만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최근 ‘공시가격 인상률 10% 제한’ 공약을 내놨다. 최근 공시가격 인상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자 박 후보는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가격 인상률이 연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 권한은 지자체가 아닌 국토교통부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서울 강서구 발산역 인근 거리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대표 공약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도 법 개정 없이 서울시장이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다. 시민단체들은 “실현 가능성은 작고, 강남 집값을 더 폭등시키고 자산 불평등은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5일 “박 후보의 부동산정책은 매우 부실하고, 오 후보는 이미 실패한 정책을 반복하는 퇴행적 모습”이라며 “여야 모두 서울시장의 권한 밖의 일들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약 상당수는 중앙정부 결정이나 국회 입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또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들이 시장의 투자심리를 자극해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크다. 박 후보는 서울시내 30만호, 오 후보는 36만호 공급 목표를 내놨다. 여기에 오 후보는 적극적인 재개발·재건축 추진 의지를 밝혔고, 박 후보도 한강변 35층 층고제한 완화는 물론 강남 재개발·재건축에도 “공공주도를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과 목동 일부 재건축 추진단지는 벌써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4ㆍ7 재보선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역 인근에서 지지호소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두 후보가 서울시장 권한 밖의 업무를 모르지 않겠지만, 양당이 이번 선거를 내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인식한만큼 일단 기선제압을 위해 이같은 공약을 계속 발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에 대해 “서울시장은 인허가권이나 층고제한 문제 등은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법적 규제가 있고 시장권한으로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도 쉽지 않은 공약인데, 여야 모두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표심 때문에 실현이 어려운 부동산 공약을 남발하면 결국 시장과 소비자들의 혼란만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