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저도 수상 소식에 퍽 놀랐다”라고 운을 뗐다. 2018년 미대를 졸업한 뒤 여러 단체전에 초대되기는 했으나 개인전은 두 번 한 게 경력의 전부였다. 그나마 개인전 한 번은 스스로 모바일에 연 것이다. 수상 경력도 없다. 그럼에도 한번 걸러진 신인에게 주는 에르메스상을 받은 것이다. 에아틀리에 에르메스 안소연 디렉터는 “통상 상은 과거 성과에 주목하거나 미래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류 작가의 어떤 점이 국내외 인사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류 작가의 작품 세계는 ‘BJ 체리장’ ‘굿바이, 체리장’ ‘대왕트래블칭쳰투어’ 등에서 보듯 유튜버 세대의 감수성으로 만든 ‘B급 영상’ ‘모바일 키치’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체리장의 장례식은 과로사한 가상의 BJ 체리장의 장례식을 전하고 대왕트래블칭쳰은 가상의 중국 여행지 칭쳰으로 떠나는 효도 관광을 다룬다. 심사위원들이 일종의 1인 미디어 쇼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 실제와 허구 등 기존의 이분법적 질서를 교란시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한 이유다.
류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왔다. 영상으로 돌아선 이유를 묻자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조각이나 설치작품으로는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라며 “서사를 부각시킬 방법을 고민하다 1인 미디어 쇼를 생각하게 됐다”라고 했다. 이어 “유튜브를 보며 자란 세대라서 그런 형식이 자연스러웠다”라며 “유튜브를 우리 시대의 미디어”라고 강조했다. 영상에는 자막과 기계음 등이 나와 흥미진진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도 모바일 영상이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미술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오락적 요소 밑바닥에 비판과 회의감이 깔려서다. 그는 “누구나 미디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영상 속의 촌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색상이나 과장된 이미지에 대해서도 “한국의 현실이 그렇지 않냐. 상업 디자인들이 아름다움의 관점이 아니라 눈에 잘 띄어 매출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을 차용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과로사 하는 설정, 효의 상품화에 대한 조롱 등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유학을 갔다 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체리장이라는 캐릭터 명을 쓰는 등 우리 사회에 똬리를 튼 서구 콤플렉스로 건드린다. 주제는 되풀이돼온 거지만 이를 MZ세대의 감수성으로 표현한 데 그의 작품세계가 갖는 신선함이 있다.
작가 스스로 작품을 전시하는 플랫폼으로 모바일을 선택한 것도 미술계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진다. 그는 2019년 정부 지원금을 받아 첫 개인전을 했다. 1년여 준비 기간을 보낸 작품의 전시 기간은 겨우 2주였다. 그는 짧은 전시 기간에 속상했지만 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전시 플랫폼을 고민하다 웹 개인전을 지난해 연 것이다. 또 오프라인에서 선보인 영상 작품도 모바일로 바꿔 올리고 있다. 체리장 연작으로 준비해 5개월 전 올린 ‘고 체리장 1주기 장례식(희귀영상)’은 조회수 17만회를 기록하는 등 대박을 치고 있다. 수상 기념전은 내년 가을에 열린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