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건이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증오 범죄 맞선 아시아계 연대

입력 2021-04-05 15:12

미국에서 아시아계 출신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에 맞선 연대가 확산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인종차별로 인한 범죄 타깃이 되는 상황에 대해 자각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16일 발생한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가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보호하려는 인식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계 혐오에 대항하는 연대 움직임은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고, 반 인종차별에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는 나오미 윌리엄스(57)씨는 매일 저녁 10시 샌프란시스코에 혼자 사는 79세 일본계 미국인 이민자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낸다고 WP에 말했다.

윌리엄스씨는 “애틀랜타 사건 이후 어머니가 처음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지냈던 50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고, 나는 3피트 길이의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어머니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인도 출신 이민자의 딸인 애니타 라마스와미(23)씨도 WP와의 인터뷰에서 “애틀랜타 사건 이후 (그동안 침묵했던 것과 달리) 명백한 인종 차별에 대해 더 기꺼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아시아계 여성들은 애틀랜타 사건 피해자들에게서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며 “집단적인 슬픔 속에서 아시아계 여성들이 인종주의에 대항해 투쟁하고 서로를 보호하려는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계의 연대는 정치세력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NYT는 “그동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인종적·민족적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투표율이 낮은 집단이었으며, 아시아계 공동체나 옹호 단체의 참여도 저조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투표율도 크게 높아졌으며, 공직에 도전하는 아시아계 출신 인사들도 늘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 인근 둘루스에 거주하는 한국계 마이크 박(42)씨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과 관련해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집단거주지에 머물 수 없다”고 NYT에 말했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박씨는 “이 끔찍한 사건이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면서 “그것은 진정한 자각이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전체 인구는 3억 3100만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조사국(센서스)은 2019년 7월 미국 인구조사에서 아시아계 비율이 5.9%라고 밝혔다.

NYT는 아시아계 이민자 대부분이 1965년 이후 미국에 들어왔고, 세대·민족·계층별로 갈라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NYT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정치세력으로 형체를 갖추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그룹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계 로랜 차우(35)씨는 “어머니는 그동안 미국 대선에서 투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며 “자신들이 희생당했던 일에 대해 분노를 나눴고, 지난 대선에서 처음으로 트럼프에 반대했다”고 WP에 말했다.



실제 아시아계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은 활발해졌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졌던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한국계 의원 4명이 당선됐다. 이는 역대 최다다.

대만 이민자 2세인 앤드루 양은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양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반짝 돌풍을 일으켰다가 중도 사퇴했다.

역시 대만계인 미셸 우 보스턴 시의원은 보스턴 시장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성인 우 시의원이 당선될 경우 1822년 첫 시장을 뽑은 이후 199년간 백인 남성이 독점한 보스턴 시장 자리에 오르는 첫 유색 인종 여성이 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기업가이면서 보수정치활동가로 활동하는 필리핀계 마크 앙은 “캘리포니아주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숫자가 600만명이며, 이는 싱가포르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규모”라며 “이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유권자 연합이 됐다”고 강조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