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폭행 무혐의라도 학내 정학 처분은 정당”

입력 2021-04-05 14:59

검찰에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한 학생이 학교의 정학 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학교가 학칙에 따라 별도의 징계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낸 정학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6월 술에 취한 학교 후배 B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시도했다. B씨는 자신이 취해 있을 때 A씨로부터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며 서울대 인권센터와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B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A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대 인권센터는 A씨의 행위가 자체 규정에 따른 성희롱 내지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서울대에 정학 12개월의 징계를 요구했고, 서울대는 정학 9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재심의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이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고 지도를 캡처해 보내는 등 구체적으로 설명한 점, 모텔에 들어갈 당시 휘청거리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은 점, 사건 이후 일상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은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묵시적인 동의 하에 신체접촉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은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징계 내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여야 하고, 이 사건의 경우 처분이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무혐의 처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A씨의 행위가 인권센터 규정에 정해진 ‘성희롱’에 해당하므로 규정에 따른 징계사유가 존재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