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계속되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긴 소규모 동네 목욕탕이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목욕탕은 10여년 전부터 대형 사우나와 찜질방 등의 기세에 밀려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으나 특히 1여년간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치명타를 맞았다.
국민일보가 지난달 28일부터 최근까지 찾아본 동네 목욕탕들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업주들은 단골 손님 위주로 근근이 버텨왔으나 최근 목욕탕발 집단감염이 이어지면서 개점휴업이 일상이 됐다고 했다. 오랜 시간 목욕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려고 해도 이제 능력도, 돈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A목욕탕 사장 이모(61·여)씨는 5일 “코로나19 유행 이후 그나마 있던 단골들도 오지 않는다”며 “1년 전에는 그래도 하루 40여명이 찾아왔지만 최근엔 반의 반도 안되는 수준”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씨는 “나이 드신 분들이 고객 대부분인데 자녀들이 감염을 우려해 목욕탕에 못 가게 한다고 들었다”며 “이미 1년 전부터 적자였지만 이제 와서 다른 일을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구로시장 인근의 B목욕탕은 100여개에 달하는 물품보관함이 텅 비어있었고, 취재진이 방문한 시각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100여평 규모의 ‘빈 탕’을 채우는 건 온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뿐이었다. 목욕탕 관리인만 간간이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탕을 오갔다. 오전 내내 목욕탕에서 만난 고객은 단 1명 뿐이었다.
B목욕탕 관리인은 “손님이 하루 4~5명 정도 오는데, 오늘은 유독 손님이 없는 것 같다”며 “주인도 돈 벌기는 포기했다. 그나마 건물주가 임대료를 적게 받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질 관리 등 고정비 지출이 큰 목욕업 특성상 손님이 적을수록 경제적 타격도 커진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목욕탕 사장은 “코로나19 유행 이전과 비교하면 한 달에 400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으나 경제적 부담을 못 이겨 폐업하는 곳도 적지 않다. 영등포구에서 30년 넘게 여인숙과 목욕탕을 함께 운영했다는 업주는 “잘됐던 적이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손해는 안 봤었다”면서 “목욕탕은 유지비가 많이 들다 보니 손해가 막심해 폐업했고 지금은 낡고 허름한 여인숙만 남았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목욕탕을 즐겨 찾곤 했다던 현장 노동자들은 감염 우려에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새벽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으로 출근하는 장모(45)씨는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시장 인근 목욕탕을 자주 방문했는데, 두세 달 전부터는 발길을 끊었다”며 “자칫 코로나에 걸리면 일도 못하고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 이모(54)씨도 “원래 일주일에 1번은 갔는데, 목욕탕발 집단감염 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걱정스러워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목욕업자들은 평상 치우기, 음식물 취식 금지 등 정부의 방역지침 권고에도 심드렁했다. 구로구의 한 목욕탕에서 이발사로 50년간 일했다는 한 70대 직원은 “정부가 지침을 내놔도 손님이 없어 의미가 없다”며 “냉장고엔 며칠째 팔리지 않는 음료수만 가득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직원이 쉴 평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멋쩍게 웃었다.
정우진 박성영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