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1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세인트 제임스 극장. ‘브로드웨이의 거물’ 배우 네이단 레인과 무용수 사비옹 글로버가 조명이 켜진 무대 위에 올랐다.
글로버는 뮤지컬 ‘코러스라인’ ‘탭댄스 키드’ ‘드림걸즈’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과거 자신이 출연했거나 영향을 받았던 작품 속 노래와 춤을 즉흥적으로 선보이며 브로드웨이의 히트작들을 소환했다. 또 레인은 유명 극작가 폴 루드닉이 그를 위해 쓴 코믹한 모노드라마를 연기했다.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은 공연 광팬으로 휴 잭맨, 패티 루폰, 오드라 맥도날드 등 그동안 브로드웨이 무대를 빛냈던 스타들을 다시 만나길 꿈꾼다.
이날 공연은 겨우 36분 열렸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역사적인 이벤트로 기록됐다. 바로 지난해 3월 11일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의 41개 극장들(500석 이상의 상업극장들)이 문을 닫은 이후 387일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다시 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도 “브로드웨이가 다시 문을 열었다. 36분. 이제 시작이다(Broadway Reopened. For 36 Minutes. It’s a Start)”라고 썼다. 공연 후 레인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오늘은 진짜 재개관을 향한 아기 걸음마”라면서도 “우리가 돌아온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주로 배우 기금(Actor's Fund)과 에이즈 치료를 위한 브로드웨이 의료서비스(Broadway Cares Equity Fights AIDS) 등 공연계 의료복지기관 소속 직원과 자원봉사자들 150명이 초청돼 1700석의 극장에서 거리두기를 한 채 관람했다. 관객들은 공연장 입장을 위해 근래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거나 백신 예방접종을 마쳤다는 증거를 제시한 뒤 디지털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공연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이번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 3월 뉴욕 주정부가 4월 초부터 정원 대비 33%, 100명 이하의 관객을 받는 조건으로 실내 공연장 개관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관객이 모두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확인되면 최대 입장 인원은 15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세인트 제임스 극장의 경우 브로드웨이 극장 가운데 규모가 큰 데다 지난 2017년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현대식 환기 시스템을 도입했었던 덕분에 이날 행사 장소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소유주인 조단 로스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집(극장)으로 돌아오는 첫 발걸음을 뗐다”면서 “오늘은 ‘브로드웨이가 돌아왔다’가 아니라 ‘브로드웨이가 돌아오고 있다’로 표현해야 맞을 거 같다”면서 감격에 차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이날 공연을 연출한 유명 연출가 제리 잭스는 “극장에 다시 오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면서 “희미하지만 이제야 맥박이 뛰는 것 같다. 앞으로 그 맥박이 더 강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욕주는 코로나19로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재개를 가속화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뉴욕 팝스업’(NY PopsUp)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당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뉴욕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활성화시키면서 라이브 공연의 에너지로 뉴요커들의 정신적, 정서적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뉴욕 팝스업은 2월 20일 시작돼 9월 6일까지 연극·댄스·코미디·팝·오페라 등 총 1000회에 달하는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짧은 공연 형태로 이뤄지는 뉴욕 팝스업은 그동안 야외에서 주로 실시됐지만 3일부터 철저한 방역을 토대로 세인트 제임스 극장 등 실내 공연장에서도 공연을 시작했다.
다만 링컨센터나 카네기홀, 브로드웨이의 대형 공연장은 이런 인원 제한으로는 수지를 결코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실내 공연 재개는 아무리 빨라도 올 9월은 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도 세인트 제임스 극장 외에 뉴욕에서 몇몇 실내 공연이 이뤄졌는데, 모두 1~2명이 출연하는 소규모 스탠드 코미디 공연장이었다. 비록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위험 때문에 공연 관계자들은 “브로드웨이가 예전처럼 돌아가려면 매우 험난하고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