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3차례 적힌 양승태, 2개월 만에 재판 재개

입력 2021-04-04 17:48
이민걸(왼쪽)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오른쪽)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중단된 지 2개월 만에 재개된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개입 의혹 등 일부 직권남용 혐의에서 공범에 해당한다는 1심 판시가 지난달 처음 나오면서 유죄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부장판사 이종민)는 오는 7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재판을 재개한다. 지난 2월 5월 공판 이후 2개월 만이다. 이 재판은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에서 기존 재판부 3명이 모두 교체되면서 잠정 중단된 상태였다.

2019년 2월 시작된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2년 가까이 공판이 길어지면서 언론과 여론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이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개입 혐의(직권남용) 일부를 처음 유죄로 판단하면서 반전이 벌어졌다. 앞서 전·현직 법관들의 사법농단 관련 1·2심 재판에서는 6차례 연속 무죄가 나온 상황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 사법부 수뇌부의 범행 공모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 전 실장 등의 재판에서 핵심 관심사였다. 형사32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은 3차례, 고 전 처장은 1차례, 임 전 차장은 4차례에 걸쳐 이 전 실장과 이 전 위원 범행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전 위원이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사건 정보와 자료를 불법 수집하도록 한 혐의의 공범으로 적시됐다. 헌재에 대한 사법부의 위상을 제고할 목적으로 일선 법원에서 이뤄진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직권취소하고 재결정하도록 유도한 혐의, 내부 비판세력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이뤄진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대해서도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형사32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이 전 위원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는 내 임기 중에 정리를 하겠다. 후임 대법원장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친 사실 등을 구체적인 근거로 들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제재라는 임종헌의 동기나 목적을 알면서도 반대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자기 의사를 실행에 옮겼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이 옛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처장은 헌재 내부 정보 수집,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 사건, 통진당 행정소송 개입 의혹의 공범으로 이 전 실장 등의 1심 판결문에 적시된 상태다. 고 전 처장은 헌재 내부 정보 수집 사건에 대해서만 공범으로 판단됐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