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거 왜하나”…부동산·네거티브에 밀린 권력형성범죄 대책

입력 2021-04-04 16:54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촉발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작 권력형 성범죄 방지대책 등 여성 공약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 휘발성 높은 부동산 이슈에다 여야가 ‘내곡동 땅’과 ‘도쿄 아파트’ 등으로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면서 젠더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후보들이 여성 공약들을 발표하고는 있지만, 권력형 성범죄 방지시스템 구축 등 핵심방안 없이 기존의 공약 틀을 답습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은 TV토론에서도 네거티브 이슈에 묻혀 성폭력 방지대책이 주요 의제로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성폭력 방지대책으로 5년간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1인 가구에 ‘스마트 안심호출기’ 지급, 인공지능(AI) 기반 여성안심존(ZONE)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서울시 부시장 중 1명은 반드시 여성부시장을 등용하고, 서울시와 산하 공공기관의 공공 구매금액 일부를 여성기업에 할당하는 여성기업 의무구매비율 제도를 제시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대표 여성공약은 성범죄공무원 ‘원스트라이크 웃’ 제도다. 오 후보는 인터뷰 등을 통해 “성비위를 일으키면 즉각 퇴출하고, 성폭력을 고의로 축소·은폐하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대책으로 비대면 탄력근무를 활성화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부동산 민심’이 블랙홀처럼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다보니 권력형 성범죄 대책이 선거의 중심 이슈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곡동 땅 관련 오 후보의 ‘거짓말 논란’을 연일 공격 소재로 삼고, 오 후보 측도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등을 거론하며 여야 공방만이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4일 국민일보에 “보궐선거에 출마한 서울시장 후보들이 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며 “전임 시장의 성비위로 촉발된 선거라면 서울시 공조직 내에서 성비위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지나 정책을 갖고 토론해야 하는데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두 후보는 지난달 29~30일 두 차례 TV토론을 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내곡동 공방, LH사태와 관련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방안 등이 토론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울시에서 권력형 성범죄를 방지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논의나 2차 가해 방지 등의 피해자 보호대책은 논의하지 않았다.

김 소장은 “각종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여성들을 많이 배치하는 방안이 권력형 성범죄가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피해자 보호는 물론이고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내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