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특정인 혐오하는 후보 떨어뜨리려 투표했다”

입력 2021-04-04 16:19 수정 2021-04-04 16:29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4·7 보궐선거 사전투표율을 놓고 시민들의 높아진 정치적 관심을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거나 비인격적인 막말 공세를 펼친 후보를 거르기 위해 투표에 참여했다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이모(33)씨는 지난 1일 사전투표에서 소중한 권리를 행사했다. 하지만 그의 표는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은 후보로 향했다. 해당 후보를 특별히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저 막말 공세를 이어가는 거대 여야 후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이씨는 4일 “선거철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대 여야 후보들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보다 ‘왜 상대방을 뽑으면 안 되는지’에만 집중한다”고 꼬집었다. 공약이나 정책은 뒷전인 채 서로 깎아내리기만 바쁘다 보니 정말 시민을 위한 후보인지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는 이례적으로 군소 정당의 후보에게 많은 표가 몰려 기성 정당이 긴장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후보의 발언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이도 있었다. 5년 전 암 투병을 한 후 새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암 환자가 ‘사회악’으로 비유되는 선거판을 보고 있자니 그저 씁쓸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우리 부산은 규모는 큰 데 (상태는) 3기 암 환자와 같은 신세”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김씨는 “낙후된 부산을 살려내겠다는 의도로 나온 발언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암 환자도 엄연한 유권자라는 점을 숙고했다면 선출직 공직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역시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중증 치매환자’에 빗대어 표현한 바 있다. 그러자 여당에서는 오 후보를 겨냥해 “쓰레기”라고 맞받아쳤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권모(33)씨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치인 사이 어떤 욕설이 오갔는지 관심이 있을 뿐 정작 그 정치인이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른다”고 전했다.

청년 유권자 사이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을 제시한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설문조사업체에 다니는 이모(37·여)씨는 사전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청년들을 위한 상세한 공약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그는 “‘88만원 세대’ ‘영끌 세대’로 불리는 2030들은 기성 정치권에 상당히 실망한 상태”라고 말했다. 매번 그럴듯한 공약을 가지고 나오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인 데다 공약 이행율도 낮았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들은 어쩌면 부조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나갈 ‘돈키호테’ 같은 우직한 후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