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퓨마에게 평생 생활비 대라” 아르헨 역대급 판결

입력 2021-04-03 15:21
덫에 걸린 퓨마. 라보스 홈페이지 캡처

아르헨티나의 한 남성이 ‘퓨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야생 쿠거에게 평생 생활비를 지원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콜롬비아 언론 카라콜 텔리비시온 등 외신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법원이 쿠거를 불구로 만든 한 농민에게 “쿠거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면서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라팜파주의 평범한 농민인 세르히오 네우바우르는 평소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잦은 출몰로 농작물 손해를 입었다. 피해를 막을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 덫을 설치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덫에 걸린 건 엉뚱하게도 쿠거였다. 아메리카표범이라고도 불리는 쿠거는 남미에 서식하는 고양잇과 맹수다. 쿠거는 앞발에 덫을 매단 채 있는 힘을 다해 탈출하려 노력했다. 덫을 질질 끌며 이동하던 쿠거는 세르히오의 농지 바로 옆 리우에 국립자연공원에서 발견됐다.

국립자연공원 측은 쿠거를 구조한 뒤 즉시 병원으로 옮겼지만, 쿠거는 오른쪽 앞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불구가 된 쿠거는 야생으로 돌아가더라도 사냥 등 야생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립자연공원 측은 쿠거가 덫에 걸린 경위를 조사한 뒤, 쿠거를 대신해 세르히오에게 민사소송을 걸었다. ‘불구가 된 쿠거가 평생 사냥을 못 하게 됐으니 생활비를 대라’는 요구였다.

법원은 이 소송에서 쿠거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쿠거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면서 쿠거에게 평생 생활비 명목으로 매월 4000페소(약 4만9000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로 세르히오는 불구가 된 쿠거가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를 대야 한다. 쿠거의 수명은 보통 15~20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은 6개월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조정된다.

야생 동물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라는 아르헨티나 법원의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 언론은 “중남미를 통틀어도 비슷한 판결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생활비를 대리 받아 쿠거를 돌보는 데 사용하게 된 리우에 국립자연공원 측은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선구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공원은 불구가 된 쿠거에게 평생 먹이를 챙겨줄 예정이다.

공원 관리소장 비비아나 안토치는 현지 언론을 통해 “쿠거는 그간 자연공원 CCTV에 여러 번 포착된 바 있다”면서 “가족 같은 야생동물이 불구가 된 게 안타까워 소송을 냈지만 큰 기대는 없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김남명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