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괴롭힘은 이렇게 시작됐다
② 금감원이 물었다 “텔레그램이 뭔가요?”
③ “환불요? 줄 돈 없어요” 주린이 울린 수법들
④ “방치하면 당신도 주가조작 공범 될 수 있다”
‘전액 환불’ 조건을 믿고 현금 300만원을 내고 ☆☆스탁 주식 리딩방에 들어갔다가 4일 만에 가입비 대부분을 날린 경수씨(‘[리딩방의 실체①] 괴롭힘은 이렇게 시작됐다’ 보도). 그는 업체 측의 ‘배 째라’식 대응을 참을 수 없어 한국소비자원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계약 분쟁을 구제해주는 정부 기관인 만큼 어느 정도 길을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는 피해구제신청서에 가입 과정 절차를 모두 소비자원에 세세하게 설명했다. 4일째 중도 해지를 요구했으나 사전에 명확히 고지받지 못한 VOD 제공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7일 이내 계약 철회권은 소비자 고유 권한이고, ☆☆스탁이 내세운 과도한 위약금 조항 역시 ‘약탈적 조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흘 뒤 소비자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경수씨를 좌절케 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악덕 업체에 걸리셨다”며 “리딩방 업체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어 환불 구제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원이 소비자와 업체 사이를 중재해주는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 내용을 업체가 따르도록 강제할 권한은 없다”며 “업체가 소비자원의 권고를 무시하면 분쟁조정위원회 절차로 넘어가게 되는데 현재 피해 사례가 워낙 많아 위원회 판정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불받을 확률은 사실상 ‘제로’이니 희망을 품지 말라는 허무한 선고처럼 들렸다.
이어 소송전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소비자원 관계자의 말은 경수씨의 눈앞을 더 아득하게 만들었다. 분쟁조정위원회에 넘어가더라도 ☆☆스탁 측에서 경수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소비자원은 해당 사건에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경수씨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맞소송뿐이었다. 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만 리딩방 가입비였던 300만원 이상의 돈이 들 것이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에게는 그럴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 “우린 돈 못 주니 마음대로 하시라”던 ☆☆스탁 환불 담당자의 자신만만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포기한 소비자원과 무너지는 사람들
경수씨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소비자원의 중재 절차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기를 한 달. 경수씨는 법원에서 온 등기 한 통을 받고 충격에 빠졌다. ☆☆스탁으로부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 걸렸다는 소식이었고 그 안에 담긴 소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업체는 소비자에게 VOD 구매 관련 내용을 수차례 안내했고 소비자가 이를 동의했음에도 소비자원을 통해 환불을 요청하고 있다. 업체가 돌려줄 환불금액은 VOD 가격과 4일 사용료를 제외한 약 38만원뿐이다.” 소비자원이 절차에 따라 소명을 요구하며 환불을 권유하자 업체가 이 절차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소송을 걸어온 것이었다.
소비자원은 “소송이 진행됐기 때문에 저희는 더 나설 수가 없게 됐다”며 물러났다. 그러고는 “개인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 상담을 받든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라”는 기계적인 답변만 내놨다. 경수씨가 답답한 마음에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에 통보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소비자원은 “수사를 부탁하는 건 별개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경수씨 사례와는 다르게 소비자원을 거쳐 전액 환불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금이 아닌 카드로 가입비를 결제한 경우다. 소비자원이 업체뿐 아니라 결제대행사나 카드사에도 분쟁 조정 사실을 알리는데, 다툼에 휘말리기 싫은 결제대행사와 카드사가 해당 결제 건을 취소하면서 환불이 이뤄지는 식이다.
그러나 열이면 열, 업체는 2~3개월 뒤 소비자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건다. “소비자가 카드사를 통해 악성 민원을 제기해 업체가 어쩔 수 없이 환불해줬다. 업체는 분명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했기에 가격을 지불하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콘텐츠란 ‘주식 종목 선택 노하우’ ‘VIP 방 정보’ ‘교육 VOD’ 등을 말한다. 소비자로서는 카드 취소로 환불까지 받았는데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만약 소비자가 이 소송에 제대로 임하지 않으면 환불받은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소장에 명시된 기간 내로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10% 이상의 이자까지 더해서 돌려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물론 이때도 소비자원은 “이미 카드사 환불이 완료된 사안이라 별도의 도움을 줄 수 없다” “민사 소송은 개인 간 문제라 소비자원은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반복한다.
금감원, 금지 행위 규정해놓고… “적발은 우리 몫 아니다”
허수아비로 전락한 소비자원에 크게 실망한 경수씨는 금감원이라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아보기로 했다. ☆☆스탁 매니저가 “금감원에 등록된 공식 업체”라며 자랑하던 모습이 번뜩 떠올랐다. 금감원이 업체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제재를 가하면 분명 해결책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경수씨는 “☆☆스탁이 고수익을 보장하며 텔레그램 안에서 회원들을 모으고 불법적인 투자자문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며칠 뒤 신고 내용을 검토한 금감원 조사역이 경수씨에게 던진 첫마디는 다소 황당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텔레그램이 뭔가요? 메신저인가요?”
경수씨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인데 그 안에서 금감원이 금지한 행위들을 버젓이 하고 있다”며 금감원이 배포한 자료를 언급했다. 금감원은 ‘유사투자자문업자 신고 및 보고 매뉴얼’을 통해 리딩방 같은 유사투자자문업체가 해서는 안 될 유의사항을 규정해 뒀다. ‘일대일 투자자문 금지’ ‘무인가 투자매매·중개업 금지’ ‘대출·대출중개 행위 및 선행매매 등의 금지’ ‘금융투자·증권·자산운용 등 상호사용 제한’ ‘금융위원회 등록 표현 금지’ ‘수익률 관련 거짓·과장 광고 금지’ ‘환불규정에 대한 명확한 안내’ ‘부당한 환불제한 금지’ ‘주식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부과, 징역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명시됐다.
경수씨는 ☆☆스탁이 회원들에게 일대일 투자자문에 가까운 리딩을 제공했고, ‘스탁’이라는 상호를 사용해 소비자가 자신들을 투자자문업으로 인식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단순 신고업체인데도 금감원에 등록된 정식 업체라고 광고하며 환심을 샀고, 수차례 마이너스를 기록하더라도 단 한 번 가격이 급등하면 그 종목만 언급해 수익률을 자찬하는 과장도 했다. 또 환불 규정 곳곳에도 함정을 파 정당한 환불 요청을 거부했고, 과도한 위약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불공정 영업을 했다는 게 경수씨 주장이다.
그러나 금감원 조사역은 “그건 단순 매뉴얼일 뿐 법적인 기준으로 활용되는 내용은 아니다. 업체가 자발적으로 지키면 좋은 것이지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단속하거나 적발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유사투자자문업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정보를 제공하는 건데 텔레그램이 메신저라면 해당 방에서 여러 명에게 지시를 했다는 말이니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경수씨의 신고는 정식 접수조차 되지 않았고 단순 제도개선 요구 민원으로 처리됐다.
“발 빼는 금융 당국 어떻게 믿겠나”
금융당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민생금융범죄 집중대응기간’을 선포하고 예방과 차단, 단속과 처벌, 피해구제 전 단계에 걸쳐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주식 시장의 활황과 함께 리딩방 범죄가 급증하자 각종 테마주 전담조사팀을 가동하는 등 칼을 빼든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감독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로 관망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금감원이 유사투자자문업체를 감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금감원 직원이 직접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 불법 행위가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암행 점검’과 업체 홈페이지나 SNS 등에 올라온 게시물을 외부에서 모니터링하며 단속하는 ‘일제점검’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업체들을 효율적으로 단속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당국은 이 사태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할 것 아니냐”며 “신고는 받아놓고 그냥 놔두고 있다. 암행점검이나 일시점검으로 어떻게 소비자를 보호하나. 사태를 방조하고 있다고 본다. 이게 반복되면 소비자들이 금융당국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처럼 리딩방 폐해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감원도 5일 대응 방침을 밝혔다. 금감원은 일단 소비자 경보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를 발령하고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확인해 아니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손실보전·수익보장 약정은 보호받을 수 없으니 가입 전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먼저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올 상반기 중 일제·암행 점검을 확대 실시하고 위법사항은 신속히 수사의뢰하는 등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주린이 울리는 리딩방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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