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라더니 사업자였다”…‘5인 미만’ 만드는 업체들

입력 2021-04-02 04:30
'고발에서 폐지로 가짜 근로자에서 진짜 노동자로'

A씨는 지난해 9월 한 스타트업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서울산업진흥원이 지망하는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유망 스타트업 취업에 성공했다 생각한 A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측은 입사한 A씨에게 수습 단계라며 급여의 80%만 제공했다. 부족한 급여였지만, A씨는 야근을 감수하며 세 달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3개월에 걸친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갔다. 사측이 본 채용을 거절해서다.

수습노동자→사업자 둔갑… ‘5인 미만’ 유지하는 회사들
문제를 제기해보려 절차를 알아봤지만 시작부터 막혔다. 분명 A씨를 포함해 모두 8명이 함께 일하던 회사였지만, 공식 서류상으로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A씨와 또 다른 수습직원, 그리고 한 명의 일학습병행노동자 등 세 명을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신고, 4대 보험에 등록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채용을 거절당했음에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피해 입증이 어려웠던 사례. 권리찾기 유니온 권유하다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이하 권유하다)’은 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공인노무사회관 세미나실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300일’ 맞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6월 고용노동청에 고발한 사업장 사례별 조사·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권유하다’에 따르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들은 크게 ▲서류상으로 회사를 쪼개 5인 미만 사업자로 위장 등록한 경우 ▲4대 보험 미신고자, 사업소득자로 위장한 직원을 포함하면 5인 이상이 되는 경우 ▲이외에 5인 이상이 근무하는데 초과수당·연차유급 등 없는 경우 등으로 분류된다.

스타트업 회사에서 피해를 당한 A씨 사례는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셈이다. 서류상 회사를 쪼개 위장 등록하는 첫번째 사례는 더욱 만연하다. ‘권유하다’ 조사에 따르면 고발·청원·구제신청을 한 사업장 80개 중 회사를 쪼개 위장등록한 유형은 73.8%(59개, 중복포함)였고, 두번째 유형은 43.8%(35개)로 나타났다.

아내 대표 세워 ‘사업장 두개 쪼개기’ …만연한 ‘위장’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심준형 노무사에 따르면 건설폐기물 업체 노동자 서모씨는 B업체 소속의 명함을 받거나 B업체의 법인카드를 이용하며 업무를 했다. 그러나 근로계약 관계는 C업체와 맺어졌다. 이상한 관계는 B업체 대표가 노동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불법 노무관리 컨설팅’을 받은 결과였다. 대표는 자신의 배우자를 대표로 하는 C업체를 새로 설립해 ‘사업장 쪼개기’를 하고 노동자를 C업체 소속으로 위장 등록해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해 왔다. 이들은 컨설팅에 따라 소속 노동자를 꾸준히 변경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B업체 대표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서씨는 지난해 10월 경기지방노동위원해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다행히 서씨는 예금거래내역서를 통해 B업체와 C업체 구분 없이 급여를 받았다는 점을 증명한 덕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업체들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위장했을 때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 노무사는 노동자가 스스로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서씨처럼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권리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에 외국인노동자 집단해고한 업체
지난 2월 경기도에 있는 한 공장 사업주는 100명 넘는 노동자가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돼 공장이 봉쇄되고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검사를 받는 일이 벌어지자 외국인노동자를 집단해고했다. 노동법상 불법적인 일방적 해고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 사업장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다.

‘권유하다’에 따르면 이 회사는 근로계약을 맺는 사업주를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고 노동 시간도 거짓으로 표기한 ‘가짜 근로계약서’ 등을 이용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했다.

‘권유하다’ 측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확산시키고,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 못 받게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4대 보험 미가입이 노동법을 무력화하는 최적의 노무관리로 통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분석한 결과 ▲시간 외·야간근로수당 미지급 77.5%(62개) ▲연차휴가 미부여(75.0%) ▲무급휴직 강요와 부당해고(45.0%)가 주를 이뤘으며 근로시간 제한 위반(35.0%)과 휴업수당 미지급(11.3%)이 뒤를 이었다.

또 전체 사례 중 4대 보험 미가입은 52.5%(42개)에 달했다.

정진우 사무총장은 “4대 보험 미가입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빼앗고 있는 신호”라며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4대 보험 미가입 제보센터를 운영하고 일부 지자체 등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유하다 측은 이날 날 일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법률지원단·노무사 등 활동가들과 공동으로 제안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운동 계획을 설파하기도 했다.

개정을 주장하는 근로기준법 내용으로는 “노동자가 아님은 노무를 받는 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음”(근로자의 정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영향력 있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사용자의 정의) “규모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적용 범위)이 제시됐다.

정 사무총장은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이들은 모두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짜 근로자’라는 것은 없다는 점을 고발하고 사회적 상식을 만드는 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