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애틀랜타 총영사…지역한인 장례식엔 참석, 총격 희생자 장례엔 불참

입력 2021-03-31 05:31 수정 2021-03-31 11:23
애틀랜타 총격사건 한인 희생자 4명 장례식 마쳐
김영준 애틀랜타 총영사, 현지 장례식 모두 불참
김 총영사, 다른 한인 장례식엔 참석해 논란
김 총영사, 추모집회 현장에도 안 나와
김 총영사 “관행에 비춰… 국민들 눈높이 못 맞춰 유감”
이수혁 주미대사에 이어 외교당국 부실 대응 논란 확산

김영준(왼쪽) 애틀랜타 총영사가 지난 23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무부를 방문해 로버트 히트 주(州) 상무장관 등을 면담하고 있다. 이번 출장에 대해서도 김영준 총영사가 애틀랜타 총격 사건 수습보다 통상적인 업무에 더 전념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됐다. 애틀랜타 총영사관 홈페이지 캡처

김영준 미국 애틀랜타 총영사가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한인 여성 희생자 4명 중 2명의 장례식이 애틀랜타에서 열렸는데, 모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준 총영사는 한인들의 추모 집회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영준 총영사는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다른 한인의 장례식엔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인단체 관계자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은 지금 아시아계 혐오 범죄의 공포감 속에 지내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고위 외교관들이 교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만 하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간) 비판했다.

특히 김 총영사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수습하는 한국 정부의 현장 책임자다.

김 총영사는 희생자 장례식에 불참한 데 대해 “기존의 사건사고 처리 관행에 비춰 나름 좀 더 신경을 써서 담당영사를 참석토록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계인 앤디 김 미국 연방하원이 28일(현지시간) 애틀랜타를 방문해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뉴시스

“어떤 장례식엔 가고, 어떤 장례식은 안 가고…기준이 뭐냐”

미국 애틀랜타에서 지난 16일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으로 숨진 한인 희생자 4명의 장례식은 이미 치러졌다. 사건 현장이었던 애틀랜타에선 2명의 장례식이 지난 25일과 26일에 각각 열렸다. 버지니아주와 뉴욕에서도 한인 희생자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러나 김 총영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애틀랜타 지역에서 열린 두 명의 장례식에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에선 영사들이 장례식에 대신 참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영사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 발생 나흘 뒤였던 20일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현지 한인의 장례식엔 참석했다. 김 총영사는 “한인 사회를 위해 큰일을 했던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한인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은 영사의 업무 영역이다.

그러나 김 총영사의 처신에 대한 비판 여론은 높다. 한 애틀랜타 교민은 “어떤 장례식은 직접 가고 어떤 장례식은 후배 영사들을 대신 보내느냐”면서 “그 기준은 뭐냐”고 반문했다. 다른 교민은 “김 총영사가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총영사는 애틀랜타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 집회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틀랜타에선 한인을 비롯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총영사는 “25일 열렸던 장례식은 유가족들이 ‘조용하게 치르고 싶다’는 뜻을 보내와 담당 영사가 대신 갔다”고 해명했다. 김 총영사는 이어 26일 열렸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해선 “결과론적으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총영사는 또 추모 집회에 불참한 데 대해선 “영사들은 추모집회 현장에 나갔다”면서 “지난 26일 온라인으로 열렸던 추모식에는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이수혁 주미대사가 지난해 1월 21일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던 특파원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이수혁 주미대사에 이어 또 …부실 대응 논란 확산

애틀랜타 총영사관의 이번 총격 사건 대응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총격 사건 초반부터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현지 경찰과의 접촉, 유가족 위로와 지원, 아시아계 증오범죄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 4가지 업무에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민은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수혁 대사에 이어 김 총영사를 둘러싼 논란이 더해지면서 교민들 사이에선 한국 외교당국의 부실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애틀랜타에서는 김 총영사가 지난 2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출장을 가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하고, 주(州) 상무장관을 면담하는 등 총격사건 수습보다 통상적인 총영사 업무에 더 전념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총영사는 “초동 대응은 마무리됐다고 판단했고, 외교 일정이라는 것이 상대방과의 약속이기도 해 출장을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외교부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 직후부터 외교부 본부·주미대사관·주애틀랜타 총영사관이 긴밀한 연락체계를 유지하면서 종합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인 단체 관계자는 “외교부의 설명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면서 “외교부 본부·주미대사관·주애틀랜타 총영사관이 무슨 대응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선 사건 현장인 애틀랜타를 비롯해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시카고 등 전 지역에서 아시아계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계인 앤디 김 하원의원을 포함해 아시아계 연방의원 8명이 지난 28일 애틀랜타 총격 사건 현장을 방문해 총격범에 대한 증오범죄 혐의 적용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수혁 주미대사는 한인 여성 4명이 숨졌던 애틀랜타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사는 4명의 장례식에 모두 불참했다. 이 대사는 워싱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한 지역에서 열렸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비판을 자초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