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코로나 기원, 중간숙주 통해 전파됐을 것” 보고

입력 2021-03-31 04:36 수정 2021-03-31 09:49
코로나19 기원 시나리오 중 중간 동물 숙주를 통한 전파설. WHO 제공

세계보건기구(WHO) 주도로 코로나19 기원을 조사한 국제 전문가팀은 바이러스가 중간 동물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조사팀은 30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WHO-SARS-CoV-2의 기원에 대한 소집된 글로벌 연구: 중국 파트’를 발표했다. 국제 전문가 17명과 중국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은 이번 연구를 지난 1월 14일부터 28일 동안 코로나19 발병이 처음 보고된 우한에서 진행했다.

조사팀은 일단 코로나19의 전파 경로를 네 가지로 상정했다. 이 가운데 바이러스가 박쥐 같은 동물에서 중간 동물 숙주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됐다는 가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박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이러스가 발견됐는데 둘 사이에는 수십 년의 진화적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 중간 고리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천산갑에서도 매우 비슷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면서 박쥐에서 출발해 최소 한 번 이상 종 간 전염이 있었을 것으로 봤다. 다만 조사팀은 점점 더 많은 종류의 동물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지만, 이는 인간에게서 전염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은 해당 가설에 대한 반론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바이러스가 시작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진행한 가축이나 야생 동물에 대한 검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는 점도 이 가설의 약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조사팀은 박쥐가 비슷한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의 야생 동물 농장에서 중국 우한으로 수입된 육류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두 번째로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 가설은 바이러스가 박쥐 등 1차 동물 숙주에서 인간으로의 직접 전파설로, 조사팀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유래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바이러스가 관박쥐에서 발견됐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팀은 특히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에 대한 항체가 박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됐다”고 알렸다.

아울러 밍크 역시 매우 영향을 받기 쉬운 것으로 증명됐다면서 밍크가 1차 동물 숙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팀은 앞서 밝힌 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박쥐의 바이러스 사이에는 진화적 거리가 존재한다면서 중간 동물 숙주를 통한 전파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이어 콜드 체인(냉동식품 운송)을 통한 전파설에 대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조사팀은 중국이 지난해 수입 냉동식품과 관련한 코로나19 발병이 있었다고 한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가능하다면 2019년 12월 이후 콜드 체인을 통해 우한의 화난 시장에서 판매된 냉동 상품, 특히 사육된 야생 동물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실험실 유출설로, 조사팀은 이를 “극히 드문” 가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사팀은 직원의 우발적 감염을 통해 자연 발생적인 바이러스가 실험실 밖으로 나온 가설만 평가했을 뿐 고의적인 유출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아울러 조사팀은 우한의 화난 수산 시장이 코로나19 발병의 근원지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초기 사례의 대부분은 화난 시장과 관련이 있었지만, 비슷한 수의 사례가 다른 시장과 연관돼 있고 일부 (사례)는 어떠한 시장과도 관련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사팀은 부록을 제외하고 12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에서 우한에서 코로나19의 첫 발병이 보고된 2019년 12월 이전에 채취·보관한 혈액 샘플에 대한 더 많은 검사를 권고했다. 동남아에서 온 동물에 대한 더 많은 검사,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대규모 집회 등에 대한 더 많은 심층 연구 등도 권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