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가 쏟아지는 ‘스쿨 미투’로 발칵 뒤집혔다. 이달 초 수도 런던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과 더불어 ‘국가적 스캔들’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28일(현지시간) BBC방송과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학생들의 성폭력 피해 증언 사이트인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Everyone’s Invited)’에 피해 사례가 쏟아지면서 국가적 스캔들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글쓴이 중에는 9살 어린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는 지난해 6월 대학생 소마 사라(22)가 만든 온라인 게시판이다. 사라는 영국 교내 만연해 있는 강간 문화(rape culture)와 여성 혐오, 성차별을 뿌리뽑자는 취지에서 이 게시판을 개설했다. 그는 여성으로, 특히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 등을 게시판을 통해 공유하고 싶었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는 개설 초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3일 런던에서 30대 여성이 납치·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마케팅 전문가인 33세 여성 세라 에버러드가 귀가하던 중 실종됐고 엿새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자 영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이가 현직 경찰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국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에도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국 여성들은 자신들이 일상에서 겪었던 성폭력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게시판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사라는 BBC에 “성희롱,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의 성추행, 이미지 폭력, 리벤지 포르노, 사적인 사진을 당사자 동의 없이 돌려보는 것, 보편화된 성차별과 여성혐오 사례들이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에버러드 추모 집회 이후 약 보름 만에 7000건 이상의 폭로가 쏟아졌고 현재 9000건을 넘어섰다.
교내 사교 파티에서 마약 등에 취한 상태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10대들의 폭로도 쏟아졌다. 일부 학생들이 특정 학교와 인물을 거론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셔본스쿨, 이튼스쿨, 웨스트민스터스쿨 등 영국 내 명문 사립학교들도 문제 학교로 떠올랐다. 해당 학교들의 파티에서 신체 접촉과 성폭력,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BBC는 명문 학교들 뿐만 아니라 100개 이상의 학교·대학들이 이 같은 성범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수사당국과 교육부는 철저한 조사와 응당한 조치를 약속했다. 지난 27일 더 타임스에 따르면 로버트 할폰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각 주정부에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실태 조사를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개빈 윌리엄슨 교육부장관은 “게시판에 올라온 성폭력 사례들은 충격적이고 혐오스럽다”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학교도 학생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성적 학대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도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사이먼 베일리 경찰청 최고 아동보호 담당관은 “지금까지 폭로된 학교 성폭력 사례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인다”며 “관련 학교들의 범죄 은폐 가능성도 함께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