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바이든의 ‘일대일로 대항마’는 모방… 돈도 의지도 없다”

입력 2021-03-29 17:26 수정 2021-03-29 18:22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해외 인프라 구축을 앞세워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는 구상을 놓고 미·중이 충돌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대항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안하자 중국 매체는 “미국은 그럴 돈도 의지도 없다”고 맞받았다. 미국은 2019년 일대일로 구상에 맞서 ‘블루닷 네트워크(BDN)’ 계획을 내놓았는데 중국은 이 계획이 이미 실패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나섰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29일 “지난 수년간 일대일로 구상에 오명을 씌운 미국이 중국을 모방해 자체 버전을 개발하는 것이 쉽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미국은 일대일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미국은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나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일대일로에 대항한 인프라 구축 비전을 언급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통화 후 기자들에게 “나는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지원하는 근본적으로 (일대일로와) 유사한 이니셔티브를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선 “내가 보는 앞에서 중국이 최강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이후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영국 정상과 통화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할 구상을 논의한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존슨 총리도 이 제안을 환영하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가 이 프로그램에 수억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동남아에서 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를 잇는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다. 주변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해 경제 영토를 넓히는 프로젝트다. 일대일로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월 말 기준 140개국, 31개 국제기구와 총 205건의 협력문서에 서명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는 현재 일대일로와 연계해 추진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2600개가 넘고 금액으로 치면 3조7000억달러(약 42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중국의 자신감은 여기에서 나온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프라 구축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실질적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미 정부가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내용 3조달러(약 3397조원)의 경기부양 패키지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며 “심지어 민주당조차 전체가 찬성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일대일로 견제 구상에 동참하고 있는 존슨 총리가 과거에는 “영국이 유럽에서 중국에 가장 개방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중국에 대한 장기적인 이해와 전략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를 추진했을 때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세력 확장 구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일대일로 대항마를 구상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이 일대일로 견제 구상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2019년 11월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을 열어 미국, 일본, 호주가 주도하는 블루닷 네트워크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투자와 교역을 늘리는 내용이다. 블루닷 계획이 공개됐을 때 중국 매체는 “아태 지역 국가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미래도 어둡다”고 평가하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