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자동차, 애들 어떡해… 민식이법 1년 충격 근황

입력 2021-03-29 07:00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성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자들이 규정속도를 어긴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권현구 기자

“민식이법 시행 1년이라고요?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요.”

지난 23일 오전 8시45분 서울 마포구 성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만난 도담지킴이 이모(73·여)씨는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이 시행된 지 1년이 됐다는 얘기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도담지킴이는 어린이나 노약자의 교통안전을 위해 정부가 시민을 채용해 학교 인근 교통 지도를 맡기는 사업이다. 이씨는 “이곳은 아침에 출근하는 차들로 항상 붐벼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교통 안내를 하는 구역은 약 300m 길이의 왕복 2차선 도로로 어린이보호구역이다. 마포구청 방면에서 성원초 앞을 지나 성산고가도로와 만나는 직선 도로다. 학교 앞 양방향 도로에 주행 속도를 표시하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제한 속도(시속 30㎞) 이내로 오가는 차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같은 시각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다른 도담지킴이 유모(76·여)씨는 인터뷰 도중 들고 있던 노란색 깃발을 황급히 차도를 향해 뻗었다. 반대편 인도에서 초등학생 6명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왼쪽 골목에서 검은색 SUV 차량이 갑자기 횡단보도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성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자들이 규정속도를 어긴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권현구 기자

유씨가 “얘들아 빨리 와, 빨리!”라고 재촉하자 학생 2명이 먼저 횡단보도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 차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유씨의 깃발 끝과 차량 간격은 3㎝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유씨는 “횡단보도 앞에서 학생들이 머뭇거리는데도 무작정 들이대는 차들이 많다”며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아침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일보는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1년(지난 25일)을 맞아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8시간 동안(오전 8~10시, 오전 11시~오후 2시, 오후 5~8시) 운전자들의 위험천만한 운전행태를 지켜봤다. 그 결과 신호를 위반한 차량 50대, 속도위반 차량 41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주행·불법 유턴 4건(이륜차), 불법 주정차 2건(택시) 등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이들의 안전은 여전히 담보되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낮 12시가 되자 학교 앞 사거리는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로 가득했다. 학교 정문까지 마중을 나올 정도로 학부모들은 어린이보호구역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오전에 횡단보도 앞을 든든히 지켜주던 도담지킴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점심시간을 맞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경쟁하듯 질주할 뿐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성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학교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 사는 40대 주부 김모씨는 매일 자녀를 데리러 나온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 입구로 차량이 들어오려면 비보호 좌회전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비보호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무작정 횡단보도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에는 직진 신호에서 비보호 좌회전으로 아파트에 진입하던 하얀색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 7명 사이를 비집고 주행하는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앙선에 놓인 차선규제봉을 타고 넘어 역주행하거나 불법 유턴을 시도하는 차량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임모(44)씨는 “인도를 침범하거나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는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최지웅 안명진 임송수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