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국군의 날’이었던 27일(현지시간) 군부가 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폭력 진압해 100명 이상을 학살했다. 전날 군부가 “시위대 머리나 등에 총을 쏘겠다”고 위협한 지 하루 만에 최악의 유혈사태가 또 발생한 것이다. 특히 사상자 중 어린 아이가 여러 명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나우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얀마 보안군과 경찰이 전국 40여개 도시에서 반 군부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이날 하루에만 최소 114명의 비무장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이래 하루 기준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군부에 의해 목숨을 잃은 미얀마 국민의 수는 450명에 육박한다.
미얀마 시민들은 최근 군부의 조준 발포 등 초강경 진압이 계속되자 시위 규모를 줄여왔다. 하지만 군부 지도자들이 27일 수도 네피도에서 국군의 날 기념 열병식을 갖자 이에 대한 반발로 이날을 ‘군부독재 반대의 날’로 규정한 뒤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최대 도시 양곤과 2대 도시 만달레이를 비롯해 미얀마 전역에서 수만명이 시위에 참석했다.
전날 국영방송을 통해 머리에 총을 맞을 수 있다며 대놓고 시민들을 협박했던 군부는 실탄과 고무탄을 쏘면서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시위대를 찾는다며 주택가를 급습해 일반 시민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만달레이에서는 13세 소녀가 자택에 있다가 군경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반 쿠데타 시위가 시작된 이래 목숨을 잃은 20여명의 미성년자 중 한 명이라고 미얀마 나우는 전했다. 또 다른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이날 5~15세 최소 4명의 아이들이 군경의 총탄에 희생됐다고 전했다.
양곤에서는 한살배기 여자 아기가 집 근처에서 놀다 군경이 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는 일도 벌어졌다. 이 아기가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영국 BBC는 미얀마발 기사에서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세는 일, 특히 어린이 사망자 수를 집계하는 일은 고통스럽다”며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가 보여준 잔혹성은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쟁터의 무기로 무장한 보안군은 거리에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총으로 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살인의 무작위성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지안 중심가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투야 자우는 “그들(군경)은 우리가 심지어 집 안에 있을 때조차 마치 새나 닭 잡듯 죽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군사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항의하고 싸울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군부의 대량학살 와중에 말로만 우려와 비난을 표하는 것은 미얀마인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며 “전 세계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 내지는 국제 긴급 정상회담을 열고, 원유와 가스 등 수입원으로부터 군부를 차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합참 주도 하에 한국과 일본, 영국, 독일, 호주 등 12개국 합참의장은 이날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군은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사회 비난에도 미얀마 군부에게 여전히 여러 우호세력이 남아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군부의 국군의 날 열병식에 러시아, 중국,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등 8개 국가가 사절단을 보냈고, 이중 러시아는 국방차관 최고위급 인사가 참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