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일주일 가까이 차단되면서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도 자사 선박 4척을 아프리카 대륙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사태가 길어지면 ‘물류 대란’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 물류 대란을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8일 HMM은 유럽을 떠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예정이었던 자사 2만4000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 HMM 로테르담과 HMM 더블린을 희망봉 방면으로 우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아시아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향하던 2만4000TEU급 HMM 스톡홀름도 기존 항로를 우회하기로 했다. 앞서 5000TEU급 임시선박 프레스티지호까지 총 4척이 이번 사태로 항로를 바꿨다.
HMM은 해운동맹 ‘디 얼라인스’에 소속돼 있다. 선박에는 디 얼라이언스 회원사 화물이 함께 실려있어 항로 변경에는 협의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디 얼라이언스 소속 컨테이너선 HMM 그단스크호는 당장 항로를 변경하지 않고 수에즈 운하 근해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에즈 운하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국내에서도 물류 대란이 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내 해운업계 특성 상 운송 기한이 비교적 넉넉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지적이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출발해서 유럽 다녀오면 보통 3개월 걸리기 때문에 일주일이 더 소요되는 것이 크게 우려될만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국내 화주들이 국내 선사만 이용하는 게 아니니만큼 해외 선사 사정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않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면 9000㎞를 더 항해해야 한다. 운항 기간도 1주일 가까이 길어져 운임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태가 단기에 마무리돼도 당분간은 여파가 지속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수에즈 운하 입구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컨테이너 선박이 무려 300여 척이나 대기하고 있어 사태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라는 분석이다.
희망봉 노선은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잘 이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를 사이에 두고 중동 지역 국가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선박들은 1967년부터 8년간 희망봉 항로로 운항했다. 수에즈 운하는 1975년에야 다시 개통됐는데, 이번 사태로 45년 만에 다시 이용될 예정이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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