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지난 27일 오전 3시38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장례 이틀째인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범롯데가(家) 일원들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최태원 SK 회장,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전날 빈소를 다녀갔고 이날은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과 세계 바둑 대회인 ‘농심배’ ‘백산수배’ 등으로 인연을 맺어온 조훈현 국수 등이 조문했다.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일본에 체류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조화로 애도를 전했다.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 사위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장녀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서경배 회장 부인인 차녀 신윤경씨 등이 이틀째 빈소를 지켰다.
신 회장은 ‘신라면’으로 대표 되는 한국 라면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적인 맛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철학을 토대로 치열한 연구개발에 힘쓰며 농심을 라면 시장에서 세계 5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신 회장은 마지막으로 출근 했던 몇 달 전에도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 속의 농심으로 키워 달라”고 당부했다.
1930년 12월 1일 울산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맏형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65년 라면사업을 시작하면서 신격호 회장과 사이가 멀어졌고, 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롯데가와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다.
신 회장은 “라면이 주식(主食)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런 브랜드 철학을 토대로 ‘한국적인 맛’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성탕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들이 신 회장에게서 탄생했다. 대표작은 신라면이다. 회사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한자를 제품명에 쓰는 파격적인 네이밍은 당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나 신 회장이 직접 임원들을 설득해 관철시켰다.
1986년 신라면 출시 이후 농심은 신라면을 필두로 국내외 시장을 장악했다. 미국 중국 등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하며 농심은 지난해 라면만으로 연 매출 2조원을 넘어섰다.
한편 신 회장은 노환으로 입원해있던 서울대병원에 1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기부금 사용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 회장은 농심 창업 이래 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고, 그룹 체제로 전환한 이후 최근까지 농심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신 회장에 이어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을 이끌게 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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