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사람처럼 탄생과 성장, 쇠퇴 과정을 겪는다. 도시의 쇠퇴는 산업구조 재편이나 인구 감소, 건축 환경의 노후화, 자연재해 등으로 도시가 활력을 잃고 축소 또는 공동화되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쇠퇴한 도시를 되살리는 방법에는 뉴타운 등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있다. 재개발이 전면 철거방식으로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통합적 도시정비라고 할 수 있다. 도시재생이 구도심 재활성화의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철거식 재개발의 부작용을 겪은 곳은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찍부터 산업화로 번성했다가 쇠락한 영국의 공업도시 쉐필드, 리버풀, 맨체스터는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지역인 종로구 창신숭인은 주거, 산업,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동대문시장의 배후단지로 봉제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고,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과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옛 한양도성의 원형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후화된 주택과 좁고 경사진 골목길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해 도시정비의 필요성이 높았다. 이에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주민 반대로 해제된 뒤 그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왔다.
창신숭인은 서울시가 국토교통부에 제안해 2014년 5월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됐다. 같은해 7월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현장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센터에는 총괄코디네이터(센터장), 공동체 코디네이터, 활성화계획 수립 용역팀과 같은 전문가와 행정(종로구) 및 지원기관(SH공사)의 인력이 상주하면서 현장의 주민과 소통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맡았던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가 해 온 ‘서울의 도시재생’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을에 대해 관심과 애착을 가지는 과정을 통해 서울을 고향으로 느끼게 되고, 그래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끔 변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밝혔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활성화계획은 주거환경개선, 지역경제활성화, 역사문화자원화 등 3개 분야 12개 단위사업으로 구성됐다. 사업유형은 예산에 따라 크게 마중물사업, 부처협업사업, 지자체협업사업, 민간투자사업으로 구분된다. 이 중 국토부가 서울시와 매칭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마중물 사업이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협업체계를 구성해 개별 주택 지원사업, 상하수도 및 도로개선 등의 기반시설 개선사업을 협업사업으로 편성했다.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노후화된 주거환경 개선이었다. 마중물 사업은 우선 공용 인프라를 정비 확충하는데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CCTV와 비상벨, 태양광 조명등, 여성안심 귀갓길 등 범죄예방환경설계 시설과 재난대비 안전망 구축, 거리환경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안전안심 골목길 사업과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쉼터, 화단 등을 만드는 소규모 쉼터 조성 사업이다. 주민공동체 활동을 위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조성하고 오랜시간 침체됐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봉제공동작업장 조성, 도시재생 리더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됐다. 창신숭인의 가장 큰 지역적 특성인 봉제산업 유산을 집대성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봉제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다양한 전시 및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도시재생의 또다른 터전이 되고 있다.
마을탐방로 기반 조성사업도 추진됐다. 옛 한양도성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의 장소성을 살려 총 46개소의 지역자원을 발굴하고 안내 사인, 지도, 콘텐츠 등을 개발해 창신숭인의 역사문화를 더욱 편리하고 깊이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백남준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창신동 생가 터에는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했다.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쓰였다가 그대로 남아 방치된 절개지를 활용하는 채석장 부지 명소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망대가 들어섰다.
도시재생에서 지역 공동체 자원은 중요하다. 해당 지역의 필요와 특성에 맞는 최적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민역량 강화사업으로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주민공모사업, 지역현안을 공모전이나 소규모 실행사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가는 주제공모사업, 도시재생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는 마을배움터(도시재생 마을학교) 등이 추진됐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의 또다른 도전은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의사결정 및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특히 주민 참여를 중심으로 현장형 거버넌스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초기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고 지원하지만 그 완성은 자생력을 가진 지역 공동체에 달려있는 것이 도시재생의 특성이다. 창신숭인은 두가지 거버넌스 혁신을 선보였다. 현장에서 활동하며 민관을 잇는 도시재생지원센터,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협의체다. 주민협의체는 도시재생 진행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행정, 전문가와 협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18년부터는 주민들이 직접 지역내 공간과 시설을 활용해 각종 사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창신숭인 지역재생협동조합(CRC)이 자생노력의 구심점이 됐다. CRC는 주민 의견을 모아 행정에 전달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창신숭인의 봉제공장은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원부자재를 구매해 만든 제품을 동대문 도매시장에 판매하는 동대문 패션산업 클러스터의 한축이다. 최근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입주해 봉제공장과 연계한 패션 브랜드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채석장 전망대 마을카페는 지역 청년들을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손경주 창신숭인 CRC 이사는 “주민 120명이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공동이용시설을 이용해 문화활동과 모임,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다”며 “올해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자율주택정비사업과 안전안심 골목길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재생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익성이 낮은 도시재생에 비해 재개발이 낫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있다. 손경주 이사는 “주민의 10~20%는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집값이 오르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창신숭인에는 주거 시설만 있는 게 아니고 봉제공장이 2000개 이상 있어 산업의 전후방 효과가 크다. 원주민과 세입자들이 밀려나지 않고 공존하는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다”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