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린 조선구마사 출연진·PD·작가…폐지 여진

입력 2021-03-27 18:09 수정 2021-03-27 19:26
각 배우 인스타그램 캡처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폐지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 출연 배우들이 줄줄이 사과 입장을 밝혔다. 주연 배우 장동윤을 시작으로 이유비, 박성훈, 감우성이 역사 왜곡 의도는 없었다며 사과문을 연이어 공개했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커지면서 배우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선제적으로 사과문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우들의 사과가 이어지자 조선구마사 PD도 모든 책임이 자신에 있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박계옥 작가도 뒤늦게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 안이한 판단을 했다”며 사죄했다.

배우 감우성은 27일 소속사 WIP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선구마사에 출연한 배우이자 제작진의 일원으로서 시청자들을 포함,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구마사에서 태종 역할을 맡았다.

감우성은 이어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배우로서 보다 심도 있게 헤아리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드린 점 역시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감우성은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서도 사과의 입장을 전했다. 그는 “조선구마사가 역사의 실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드라마가 아닌 악령을 매개로 한 허구의 스토리라 하더라도 실존 인물을 통해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배우로서 시청자분들께 역사 왜곡으로 비춰질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지난 5개여월 동안 드라마 제작을 위해 노력해 주신 감독님이나 제작 현장의 스태프, 그리고 촬영에 임한 배우들 모두 각자 맡은 역할만을 소화하다 보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이로 인해 금번의 드라마 폐지에 이른 점,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 포스터

조선구마사 출연 배우들의 사과문 발표는 드라마 속에서 충녕대군으로 출연한 주연배우 장동윤을 시작으로 이어졌다. 장동윤은 이날 오전 배우 중 가장 먼저 사과문을 게재하며 “이번 작품이 이토록 문제가 될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며 “변명의 여지 없이 대단히 죄송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창작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만 작품을 바라봤다”며 “사회적으로 예리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을 간과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이유비 역시 발 빠르게 사과문을 올리며 대응에 나섰다. 조선구마사에서 ‘어리’ 역을 맡았던 이유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역사 왜곡 부분에 대해 무지했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양녕대군을 맡은 박성훈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출연 배우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창작과 왜곡의 경계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했다”고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연출자도 사과에 나섰다. 조선구마사 연출을 맡은 신경수 PD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최근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해 모든 결정과 최종 선택을 담당한 연출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사죄드리고자 한다”며 “드라마의 내용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선택의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편향된 역사의식이나 특정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됐던 장면들은 모두 연출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재차 사과했다.

배우들과 연출자의 사과까지 이어진 뒤 이날 박계옥 작가도 사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입장문을 내고 “사려 깊지 못한 글쓰기로 지난 며칠 동안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조선의 건국 영웅분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 왜곡은 추호도 의도한 적이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남긴 점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SBS ‘조선구마사’ 속 문제의 장면들. 윗줄 사진은 술상에 놓인 중국 음식들. 아래는 중국풍 등불이 설치된 세트(왼쪽)와 태종 이방원이 백성을 학살하는 모습. 방송화면 캡처

앞서 조선구마사는 지난 22일 1회 방송부터 피단·월병 등 중국풍 소품을 대거 사용해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 태종 등 실존 인물의 왜곡된 묘사를 내놓으면서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드라마를 집필한 박 작가가 전작 ‘철인왕후’에서도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도 불씨가 됐다. 철인왕후는 방영 전부터 중국 드라마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해 논란이 일었었다. 또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지칭하는 대사가 방송되면서 비판받았다.

여기에 중화권 기반 동영상 사이트 WeTV에서 조선구마사를 “북한이 건국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드라마”라고 소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 분노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 전문가들도 역사 왜곡 비판에 가세하며 비판 여론은 점점 커졌고, 광고주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가 연이어 광고·장소 지원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제작사와 방송사 SBS는 지난 24일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 뒤 다음 주 방송을 결방하고 작품을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쉽게 줄지 않았고, 광고를 편성한 기업들마저 잇따라 ‘손절’하면서 결국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전성필 기자, 김남명 인턴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