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회장은 누구…장인 정신 잃지 않던 ‘라면쟁이’

입력 2021-03-27 10:43
고(故) 농심 신춘호 회장.

27일 별세한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은 한국 라면시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신 회장은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적인 맛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철학과 장인정신으로 농심을 라면 시장에서 세계 5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신 회장은 1930년 12월 1일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 중 셋째 아들이다. 1958년 대학을 졸업 뒤 일본에서 성공한 맏형 고(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일본에서 쉽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일본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다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으로 라면의 기능을 고민했다.

신 회장은 “라면이 주식(主食)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확고한 브랜드 철학을 가진 신 회장은 이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어내기를 주문해왔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할 것, 제품 이름이 제품의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할 것, 한국적인 맛이어야 할 것’이라는 세 가지를 굳게 지켜왔다. 신 회장은 또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회사를 세울 때부터 신 회장은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고 연구에 힘써왔다. 당시 라면 산업이 궤도에 오르고 있던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는 게 더 수월한 방법이었겠으나, 신 회장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직접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내고 한국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연구개발에 매진하도록 했다.

이런 그의 고집은 경기 안성공장을 세울 때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신 회장은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선진국의 제조설비를 검토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을 구현하기 위해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는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서는 한국인의 입맛을 맞추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기로 유명한 지역 명칭과 ‘탕’을 합쳐 이름 붙인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은 신 회장에게서 탄생했다.

무엇보다 대표작은 신(辛)라면이다. 1986년 처음 출시된 신라면은 출시 당시 이름부터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무렵에 나온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 이름을 앞세웠고, 한자를 제품 이름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

신라면. 농심 제공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하기 쉬운 데다 눈길을 끄는 이름, 나아가 제품의 특징을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며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다. 이후 농심은 신라면을 필두로 해 국내외 시장을 휩쓸었고, 지난해 라면만으로 연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신 회장은 해외 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수출을 하면서도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현지화하는 대신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신 회장은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고급 이미지도 더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국가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신라면은 해외 수출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하지만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뿐 아니라 주요 정부시설에까지 라면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통했다.

맛과 품질로 승부수를 던진 신라면은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통했다. 2018년 중국 인민일보는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신라면은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돼 세계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신 회장은 이날 오전 3시38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1956년 농심을 창업해 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고,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최근까지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신 회장에 이어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농심을 이끌게 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