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건 다룬 ‘비극의 탄생’은 2차 가해 집약체”

입력 2021-03-26 18:24

언론인권센터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취재 기록을 담은 전 서울시 출입기자의 저서에 대해 “2차 가해의 집약체”라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25일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지난 19일 출간된 손병관 기자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 대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책이자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가해의 집약체”라고 규탄했다.

단체는 “책의 저자인 손병관 기자는 출간 전부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기자’가 ‘취재’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로 이루어진 책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책이다. 또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피해의 집약체”라고 강조했다.

‘비극의 탄생’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취재원이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했다 하더라도, 후에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취재원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손 기자는 취재원의 증언을 동의도 받지 않고 책에 실었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용을 하는 일은 기자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손 기자는 대화의 빈도와 목적, 내용이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서 “이미 성희롱으로 판단된 사안이지만 본인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검열하려고 하는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다. 마치 내용물이 공개된다면 사건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자는 일반인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 일반인들이 주고받을 법한 내용을 기자의 이름으로 쓰는 것을 취재라 부를 수 없다”며 “손병관 ‘기자’는 자신의 관찰이 전부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어 시대에 뒤떨어지는 개인 의견을 취재기로 둔갑시킨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인권센터는 “‘비극의 탄생’이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언론 인권적 관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판단한다”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마무리했다.

정인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