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는 것이다. 70년 전 전쟁에서 진 빚.”
라미 현(Rami Hyun·본명 현효제) 사진작가는 70년 전 한국전쟁의 빚을 갚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참전용사들의 모습과 사연을 기록해 왔다. 자비로 국내외 참전용사를 직접 찾아가 무료로 사진을 찍은 뒤 액자에 넣어 전달한다. 2017년부터 촬영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수는 1400여명이다.
사진을 찍고 난 후 그는 “감사합니다”라며 90도 인사를 한다. 액자에 든 사진을 받아든 참전용사는 웃음을 짓는다. 그들의 웃음은 라미 현 작가가 참전용사 사진을 찍는 이유가 됐다.
국민일보는 지난 19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찾아서(Project soldier kwv)’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잠실 에비뉴엘아트홀에서 라미 현 작가를 만났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있나.
“해답을 찾기 위해 참전용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군복 사진전에서 살바토르 스칼라토 참전용사와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해외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왜 저 사람은 다른 나라 전쟁에 참전했는데 저런 자부심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 호기심 하나가 그들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자기 인생에서 (참전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한다. 외국 참전용사들은 국군과 자부심이 다르다. 이에 비교해 국군은 한이 많다.”
-국군과 유엔군의 차이가 있나.
“국군 참전용사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것에 비해 대우가 별로다. 그게 한스러운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보훈 행사 관련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돼 있다. 굳이 참전용사가 아니라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제한 없이 (보훈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참전용사 초청 행사도 비공개로 진행하는 등 아직 폐쇄적이다. 해외는 국민이 군인을 존중하기에 앞서 국가기관과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참전용사를 존중한다. 그게 다르다.”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는 어떤 작업인가.
“군인과 참전용사 그리고 유니폼을 입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다양한 사람의 모습과 이야기를 다음 세대를 위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예술 작업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네 번째 이야기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찾아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를 찾아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킨 분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진 촬영은 당연히 재밌다. 그리고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참전용사의 모습과 이야기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외도 다녀왔는데.
“2017년 런던을 시작으로 영국과 미국 두 국가를 40번 정도 방문했다. 한 번 갈 때마다 500만~600만원이 필요하므로 대략 3억~4억원 정도 사용했다. 영국과 미국 참전용사 이외의 사진은 참전용사가 한국에 방문할 때 직접 찾아가 찍었다. 현재까지 참전국 14~15개국을 촬영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돕는 분들이 있었다. 감사하다.”
-참전용사를 어떻게 섭외하고 촬영하는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주로 페이스북을 활용해 연락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는) 연결점이 생기고 소개도 받는다. 그렇게 소개에 소개를 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오해를 받는다든지 등 힘든 점은 없나.
“간혹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다. 참전용사를 무료로 촬영하겠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가기관에서도 사기꾼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돈이다. ‘한 분당 얼마씩 받는가’ ‘돈이 되니까 하려는 거 아니냐’ ‘네가 뭐라고 하냐’ 등 다 돈으로 본다. 그래서 (참전용사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해외로 찾아갔다.”
-사진을 주시면 많이 좋아할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보다 볼 때 더 좋아하신다. 막상 참전용사를 만나면 본인은 스스로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진짜 영웅이 자신들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라고 여긴다. 참전용사들은 자신을 오히려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 군인의 몸을 마주한다. 촬영된 사진을 받으면서 자신도 영웅이었다고 비로소 실감한다. 이분들이 원하는 건 기록이며 잊히지 않는 거다.”
-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달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진은 액자로 전달하는 게 예의다. 같은 사진을 줘도 액자에 넣어 전달하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사진 촬영을 하고 액자에 사진을 넣어 직접 건넨다. 액자를 참전용사 분에게 전달할 때면 그분들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저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미 70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 이게 내 대답이다. 그분들은 이미 액자값을 냈다. 우리에게는 많은 빚이 있다. 이 액자에는 70년 전의 빚을 갚는 마음이 담겨 있다.”
-기억에 남는 참전용사가 있는지.
“너무 많다. 그중에 윌리엄 빌 웨버 대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웨버 대령은 ‘자유에는 의무가 있는데 군인은 자유를 뺏기거나 없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다. 군인은 2차대전처럼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사람들은 빚진 게 없다. (우리가) 잘 싸우고 그랬으면 통일됐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웨버 대령은 우리나라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인터뷰하면서 고조선 역사부터 쭉 이야기하기도 했다.”
-참전용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찾아가고 싶다. 감사하다.”
-국민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국가유공자 모자를 쓴 분들을 본 적이 있다. 아직 참전용사를 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인사 한 번에도 그분들은 너무 좋아한다. 언젠가 이들을 만나게 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참전용사들은 무척 좋아할 거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2023년까지 6·25전쟁에 참전한 22개국 모두를 방문해 감사함을 전하면서 동시에 기록하고 싶다. 다음 세대가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는 참전용사를 찍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참전용사를 알리는) 교육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참전용사의 사연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김아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