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낚시꾼 김기문(57)씨는 그날도 낚싯대를 드리운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몇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사고를 당해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뒤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였고 어디에서도 특별한 일은 없는 듯했다.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첨벙, 거대한 소음이 들려왔다. 뭔가 커다란 게 굴러떨어진 듯했다. 주위를 둘러본 김씨는 농수로에 뒤집힌 채 처박힌 차 한 대를 발견했다. 그 다음부터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지난 21일 낮 12시29분쯤 경남 김해시 화목동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3m 아래 농수로에 굴러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낚시꾼 김씨는 차량 속에서 일가족 3명을 구해냈다. 당시 차량이 빠진 하천의 깊이는 약 1.5m 안팎. 수압에 안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가족이 익사할 위기에서 영웅처럼 나타난 김씨가 이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김씨는 사고 다음날인 2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에 나도 사고를 당해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이후에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가 한 일로 자꾸 띄워주니 조금 미안스럽기도 하다”고 웃었다.
다음은 김기문씨와의 일문일답.
-당시 사고 현장은 어떤 상황이었나
“일요일에 낚시를 하고 있던 도중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3m 정도 되는 둑 아래로 내려가 자세히 보니 차가 완전히 전복된 상태에서 앞 엔진 쪽부터 침수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옷을 벗고 물로 뛰어들었다.”
-차 바깥에서 문을 열어 구조를 시도한 건지
“그렇다. 물에 들어갈 때 즈음에는 차량이 거의 가라앉은 상태여서 차량 앞문을 손과 발로 동시에 밀어내며 문을 열었다. 왼손으로 운전석 쪽을 휘저으니 사람 목이 잡혀 그대로 끌어 올렸다. 운전자 분이었고, 숨을 쉬길래 (차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물어봤다. 그분은 두 명이 더 있다고 답했다.”
-뒷좌석의 두 분도 발견하고 구해낸 건가
“차량 앞문을 열었던 것처럼 뒷문을 열고 사모님을 먼저 구조했다. 그분이 숨을 몰아쉬면서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길래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손을 휘저어봤는데 아들 분은 잡히지 않았다. 차량 뒤쪽으로 돌아가 다시 (반대쪽) 문을 열었는데 그 사이에 사모님이 아들을 구한 것 같았다.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다른 낚시꾼 분들도 ‘아들 나왔다’고 하길래 저도 물 밖으로 나왔다. 처리부터 구조까지 한 2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이후 신고나 수습도 빠르게 이뤄졌다
“구조를 하는 동안 다른 낚시꾼분들이 신고를 대신 해준 것 같다. 나는 구조를 하고 한 두시간 정도 낚시를 더 했는데 가족분들이 인사 차 다시 오셨다. 그래서 ‘부담갖지 말라, 몸은 어떻냐’고 물었다. 다 회복했다고 인사 말씀하길래 안심하고 돌아갔다.”
-구조하며 다친 곳은 없는지
“감기몸살 증세도 있고 왼쪽 발목이랑 어깨가 다쳤는지 조금 아팠다. 그래도 조금 쉬며 회복하는 중이다.”
-경찰에서 표창장을 수여한다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가 구조한 일로 자꾸 띄워주니 조금 미안스럽기도 하다(웃음).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 목숨인 셈인데.”
-덤으로 사는 목숨이라면
“옛날에 회사에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2014년 10월쯤 끼임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일로 지체장애 4급을 판정 받았다. 약 3년 정도 병원 생활을 했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 병원의 많은 주치의들, 구급대원들이 나를 살려줬는데 그래서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어제(21일) 사고 현장을 확인한 후에는 나도 모르게 ‘저 안에 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라는 생각이 들어 몸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