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욕제와 혁규킹과 드라이브

입력 2021-03-25 20:14
한화생명e스포츠 제공

한화생명e스포츠 ‘데프트’ 김혁규는 지난 18일 KT 롤스터전 직후 POG 인터뷰에서 ‘재미있게 사는 것’을 삶의 새 목표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간 늘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 왔던 김혁규였기에 커뮤니티에선 다소 의외란 반응이 나왔다.

김혁규는 25일 프레딧 브리온전 직후 취재진과의 공동 인터뷰에서도 같은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허리 부상으로 전례 없는 부진을 겪은 뒤 그에겐 큰 심적 변화가 생긴 듯했다. 여전히 높은 성적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심적인 여유도 찾게 됐다.

“제가 8년 정도 프로 생활을 했나요?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이후 항상 성적만 좇아왔어요. 지금도 물론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올해는 재밌게 하자. 게임을 떠나서 재밌게 살자. 어렵겠지만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지난해에 아프기도 했고, 개인적인 사정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재밌게 살지 않으면 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재미있는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반드시 게임이 아니더라도요.”

김혁규는 성실의 아이콘이다. 다른 팀 코치들에겐 선수 승부욕을 자극하는 대상으로도 쓰였다. “데프트도 새벽 6시까지 솔랭 해. 더 적게 연습하면 언제 따라잡아.” 퇴근하던 선수의 발걸음을 다시 연습실로 돌리는 마법의 주문이다. 한 지도자는 “자유롭게 팀을 꾸릴 수 있다면 연습실 분위기를 잡아줄 수 있는 김혁규부터 영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혁규의 입에서 나온 ‘재밌게 살겠다’는 말이 낯설고, 동시에 반가운 이유다.

김혁규는 자신에게 재미를 주는 요소로 샤워 입욕제와 휴가 기간에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개인 방송, 종종 즐기는 드라이브를 꼽았다. “소소한 재미를 찾아야 의욕이 생겨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목표 설정 덕분일까. 그는 지난해보다 더 좋은 기량을 과시 중이다. 프레딧전을 앞두고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측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그는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 분당 대미지(DPM) 1위(667), 팀 내 대미지 비중 1위(28.9%), 골드당 대미지 1위(155.6%)에 올라있다.

김혁규는 인터뷰를 마치기 전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항상 많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경기도 잘 준비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좋아요. 산책도 많이 하세요. 아, 사람 많이 없는 곳에서요….”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