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정치적 악재에 흔들리고 있는 독일 최장수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부활절 전후 5일간의 전국 봉쇄령 방침을 단 하루만에 철회했다. 1년 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과학과 이성에 기반한 정치적 리더십으로 국내외 찬사를 받았던 메르켈 총리였지만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그의 명성도 흔들리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1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도출했던 ‘부활절 전면 봉쇄’ 방침을 결정을 내린지 36시간도 지나지 않아 뒤집었다. 그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생각이 짧았다. 전적으로 내 실수”라며 “지난 24시간 우왕좌왕으로 불안을 촉발해 깊이 유감스럽다. 모든 시민에게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2일 연방정부·16개 주총리 회의를 열어 부활절 주간인 오는 4월 1~5일까지를 ‘일시 정지 기간’으로 명명하고 완전봉쇄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식료품점까지 문을 닫고 모두가 집에 머물도록 하는 초강수 조처였다. 변이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 확산세를 보이며 3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자 선제 차단에 나선 것이다. ‘부활절 봉쇄령’을 더 빨리 발표하기 위해 메르켈 총리가 23일 새벽 2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했다.
급작스러운 발표에 독일 국민들과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었다. 독일 내 3개 야당 전체가 메르켈의 집권 연정이 여전히 의회 다수당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신임투표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이에 대해서는 거부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불과 1년 전 메르켈 총리는 보건부장관과 의료전문가들이 매일 코로나19 상황을 상세히 업데이트하도록 하는 등 정확한 의사소통과 과학에 기반한 팬데믹 관리로 국내외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12개월이 지난 현재 독일 국내 여행은 금지하면서 스페인 휴양지 마요르카로 가는 것은 허용하거나, 갑자기 심야 기자회견에서 주요 정책 변화를 발표하는 등의 모순적이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메르켈의 명성이 손상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베를린 헤르티 거버넌스 스쿨의 정치학자 안드레아 롬멜은 “제3의 확산세 속에서 메르켈식 의사소통의 일관성과 목적적합성은 잊혀져 사라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달 초 친정인 기독민주당(CDU) 연방의원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CSU) 원내부대표가 방역 마스크 납품을 중개하고 업체로부터 수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마스크 스캔들’도 9월 총선을 앞둔 메르켈로서는 뼈아프다. 독일 국민 접종률이 10%에 미치지 못하는 등 더딘 접종 속도도 메르켈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독일 정부·여당연합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에 대한 대한 신뢰도는 지난해 12월에만 해도 60%에 육박했지만, 최근 28.5%까지 추락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