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대법원 “‘기레기’ 댓글 모욕 표현이지만 죄는 아냐”

입력 2021-03-25 10:50 수정 2021-03-25 11:31
국민일보 DB

인터넷 기사의 댓글란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달아도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기레기라는 용어가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고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현재 인터넷상에서 무분별한 욕설과 모욕, 비난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인터넷 막말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해 3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대구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자동차 전문지 기자인 정모씨가 자동차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MDPS’의 장점 등에 관해 작성한 기사가 포털의 자동차뉴스 ‘핫이슈’에 게재되자 댓글로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 정씨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댓글을 게시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를 지칭하는 말이고, 더욱이 당시 기사를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1심은 “피고인도 진술하고 있듯이 기레기라고 함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그 단어 뒤에 물음표를 달았다는 사정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국민일보 DB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은 이 사건 댓글이 작성되기 전에도 이미 ‘기레기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여러 개의 댓글이 게시돼 있었던 점에 비춰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댓글들에 동조하면서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를 모욕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1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대법원은 “기레기란 표현은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또 “독자들은 이 사건 기사의 내용 및 이를 작성·게재한 언론의 태도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해당 사이트는 그러한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네티즌 댓글’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레기’는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고, 이 사건 기사에 대한 다른 댓글들의 논조 및 내용과 비교해 볼 때 이 사건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측은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 글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