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가를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 고시엔 구장에 울려 퍼지게 한 주역, 고마키 노리쓰구(小牧憲継) 도쿄국제고 감독은 사실 2009년 감독 2년 차에 팀을 떠날 생각이었다. 장난스럽게 하는 선수들을 가르치느라 ‘악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그는 결국 올해 일본 고교야구 ‘꿈의 무대’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서 첫 승리를 일궈냈다.
고마키 감독은 24일 일본 스포츠매체 스포티바와의 인터뷰에서 “쿄토국제고 야구부에 처음 왔을 때 솔직히 야구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야구가 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일일이 가르쳐야 해서 손이 많이 갔지만 우선 확실하게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되돌아봤다.
고마키 감독이 교토국제고를 처음 만난 건 공교롭게도 교토국제고의 전신인 교토한국학원이 1999년 야구부를 만들고 처음 만난 상대팀 소속 선수로서였다. 그는 상대팀이었던 교토세이쇼고 1학년 주전으로 뛰었었다. 결과는 34대 0으로 교토세이쇼고의 압승이었다. 신생팀 도쿄국제고의 쓰라린 첫 패배 현장에 바로 고마키 감독이 있었던 것이다.
고마키 감독은 “당시 시합에서 뛰던 나를 교토한국학원 고교부 야구부 감독이 기억하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다니던 내게 교토한국학원 중학부 출신의 고교 동창을 통해 재미삼아 가르쳐보라고 제안한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현지은행에 근무하면서도 교토한국학원 야구부 연습을 돌봐주게 됐다.
교토한국학원의 전임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사임하면서 그는 2006년 12월 본격적으로 지도를 맡게 됐다. 결국 2007년 4월 정식 코치로 취임한 데 이어 2008년 4월 감독이 됐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봄 단 13명의 야구부원으로 교토 지역대회 3위로 긴키(오사카와 교토 및 인근 현 포함) 지역대회까지 출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해를 끝으로 3학년 4명이 졸업해 부원이 9명으로 줄자 사퇴를 고려했다. 그는 “전임 감독이 육성하던 아이들이 졸업하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듬해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내게 가르침을 받겠다고 온 학생들도 있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됐다”고 회고했다.
처음엔 아이들을 다소 엄하게 가르치기도 했지만 야구부원의 기량과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그의 지도 스타일도 유해졌다. 고마키 감독은 “옛날에는 군대 같은 스파르타식 지도가 당연한 분위기였지만 엄격하게 하는 건 자기만족이 아닌가 생각됐다”며 “요즘 선수들은 각자 의지를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에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또 경쟁한다. 그런 학생들이 들어오면서부터 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통칭 고시엔이라 불리는 고교야구대회는 마이니치신문이 3월 주최하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봄 고시엔)과 아사히신문이 8월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의 2가지다. 일본 내 4000여개 고교야구팀 중 단 32개교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고교야구부라면 고시엔 진출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고마키 담독은 이날 외국계 국제학교로 처음 진출한 고시엔에서 승리까지 거머쥐었지만 “고시엔에 집착한 지도는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감독이라기보다 선수들의 서포터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라고 얘기한다”면서 “아이들이 고시엔에 나가고 싶어 애쓰니까 ‘이 정도 수준에는 올라가야 한다’고 충고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교토국제고 운동장은 네 면이 모두 70m 이하로 넓지도 않은 데다 모양도 약간 뒤틀린 직사각형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몰두한 연습이 수비 위주의 야구였다. 내야 연계 플레이나 일부러 낙구한 뒤 다시 송구하는 등 연습을 다양하게 했다. 그리고 고마키 감독은 유럽의 축구팀이 많이 하고 있는 뇌와 몸의 연동성을 중시하는 ‘라이프 키네틱 트레이닝’을 도입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노력한 덕분에 2013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교토국제고 출신 소네 가이세가 육성선수 3위로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명을 받았다. 소네의 프로 진입은 팀에 큰 영향을 가져왔다. 소네는 소프트뱅크 육성선수와 2군을 거쳐 1군으로 올라갔으며 2018년부터 히로시마의 주전으로 뛰고 있다. 고마키 감독은 “소네는 중학교 때까지 프로 갈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에서 노력한 결과 프로 선수가 됐다”면서 “그러면서 중학교 야구부의 괜찮은 아이들이 교토국제고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네 이후 2019년 드래프트에서는 우에노 교헤이(니혼햄 신인지명 3위),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하야 신노스케(소프트뱅크 육성 4위), 쓰리 주이(오릭스 육성 4위) 등 잇따라 프로야구계에 인재를 보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1947년 재일교포들의 교육을 위해 교토조선중으로 개교한 뒤 고등교육으로 영역을 확대해온 한국계 국제학교다. 한국어·영어·일본어로 교육한다. 현재 재학생은 131명으로 일본인 93명, 재일교포(한국 국적) 37명이다. 모두 일본 국적인 야구부원 40명에게도 한국어 수업은 필수다. 고마키 감독은 “한국어 교가가 어렵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마스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100점 만점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현재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야구를 잘하고 싶다면 인간으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