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피해 조국도 양심도 버린 ‘검머외’ 부자들, 세무조사 착수

입력 2021-03-24 17:43

서울에 거주 중인 A씨는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증여할 방법을 찾다가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해당 국가 영주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이후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해외 부동산 매입에 나섰다. 취득한 해외 부동산은 페이퍼 컴퍼니 지분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증여됐다.

상식적으로 보면 증여 대상자인 A씨 자녀에게 증여세 의무가 부과된다. 그런데 A씨 자녀는 국세청에 증여 내역을 신고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A씨 자녀 모두 해당 국가 시민권을 지니고 있는 이중국적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데 세금을 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언뜻 일리 있어 보이지만 국세청 조사 결과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A씨 자녀는 유학 시절을 제외한 대다수 기간 동안 한국에 거주했다. 재산세는 거주 지역에 따른 ‘속지주의’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A씨 자녀는 탈세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국가에서 증여세를 냈다면 국내 신고 과정에서 그만큼을 공제해주는데 A씨 자녀는 해당 국가에서도 증여세를 전혀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A씨 일가에게서 증여세 및 가산세를 더해 수십억 원을 추징하기로 했다.

지능적 역외 탈세가 끊이질 않자 국세청이 또 다시 칼을 빼들었다. 국세청은 국적 세탁을 통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는 A씨를 비롯한 54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돌입한다고 24일 밝혔다. 2019년 이후 4번째 역외탈세 조사에 나선 것이다. 앞선 3번의 조사에서는 모두 318명이 세무조사 대상에 오른 바 있다.

중계무역·해외투자 명목으로 소득을 해외 이전한 뒤 역외 비밀계좌를 개설해 빼돌리는 방식을 쓴 사례가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복잡한 국제거래 구조를 악용해 편법적으로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있는 이들이 16명으로 뒤를 이었다. A씨처럼 국적 세탁을 시도한 이도 14명에 달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들의 역외탈세 혐의를 철저히 검증해 원칙에 따라 과세하고 조세포탈 혐의 확인 시 곧바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