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유통공룡들이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SSG닷컴의 오픈마켓 전환을 추진하고 최근 네이버와 지분을 교환하는 등 신세계그룹이 공격적으로 움직이자 한동안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롯데그룹도 이커머스 키우기에 전면 나서는 모양새다.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 인수 과정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며 200억~300억원 정도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로 롯데쇼핑은 중고나라 지분의 23% 정도를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이 중고나라 인수에 참여한 배경을 두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빠르게 커진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20조원으로 커졌다. 그 중에서도 중고거래 플랫폼의 시초인 중고나라는 회원수 2300만명, 월 사용자 1220만명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해 매출은 역대 최대인 5조원을 기록했다.
강희태 롯데그룹 유통BU(사업부문) 부회장 겸 롯데쇼핑 대표는 전날 열린 롯데쇼핑 주주총회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대해 “충분히 관심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간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11번가와 아마존의 협력, 네이버와 신세계의 지분 교환 등 이커머스 시장이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침묵했던 롯데가 이커머스 키우기에 본격 돌입한다고 선언한 셈이다.
롯데의 이런 움직임에는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신세계의 행보가 자극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야구단 인수부터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신세계를 보면서 롯데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면 완전히 뒤쳐지겠다’는 위기감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그래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오는 매물마다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지난 16일 네이버와 2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협력을 예고한 데 이어 이날 SSG닷컴을 오픈마켓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SSG닷컴은 “다음달 20일부터 오픈마켓 시범 운영을 시작하고 시스템 안정화 기간을 거쳐 상반기 중 해당 서비스를 정식 론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SG닷컴이 오픈마켓을 정식으로 도입하면 그간 약점으로 꼽혀온 상품 수를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SG닷컴은 현재 약 1000만종의 상품을 취급하고 있는데, 쿠팡(2억~3억개) G마켓(1억개)과 비교하면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다. 이뿐 아니라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이날 열린 이마트 주주총회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며 온라인 몸집 키우기에 대한 의지를 더욱 명확히 했다.
현재 롯데와 신세계가 온라인 부문에서 보완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지난해 거래액이 약 7조6000억원으로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 5%가량을 차지했음에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롯데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미미한 점유율을 이베이코리아(시장점유율 12%) 인수를 통해 보완하거나 중고거래 시장 진출을 통해 타 이커머스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마련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SSG닷컴의 경우 지난해 거래액이 전년보다 37% 증가했지만 그 규모(3조9236억원)가 여전히 경쟁업체보다 작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신선식품과 명품 등 일부 카테고리는 상품 수 대신 ‘신뢰감’으로 승부하되 비식품, 생활용품 등의 분야는 오픈마켓으로 전환해 상품 경쟁력을 키우기로 했다. 다만 SSG닷컴이 “오픈마켓 전환과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별개”라고 밝힌 만큼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점유율 끌어올리기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두 유통공룡의 적극적 행보에 올해 이커머스 시장의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 우려하면서도 롯데쇼핑의 중고거래 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성은 분명하다”면서도 “네이버 카페 기반의 중고나라와 롯데쇼핑이 어떤 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