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인 고시엔 구장에서 24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두 번 울려 퍼졌다. 1회를 마치고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 본선 1차전에서 만난 두 팀의 교가가 나온 데 이어 연장 끝에 이기고 승리팀으로서 다시 한번 교가가 나온 것이다. 이날 경기는 일본 최대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일본 효고현 소재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미야기현 소재 시바타고와의 제93회 봄 고시엔 1차전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5대 4 승리를 거뒀다. 1회말 시바타고에 2점을 내준 교토국제고는 7회초 3점을 얻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7회말 시바타고가 다시 1점을 내 3-3 동점이 된 후 9회까지 승부를 내지 못해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 10회초 2점을 얻은 교토국제고는 10회말 시바타고의 추격을 1점으로 막아내며 외국계 국제학교로 처음 진출한 고시엔에서 승리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거뒀다.
통칭 고시엔이라 불리는 고교야구대회는 마이니치신문이 3월 주최하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봄 고시엔)과 아사히신문이 8월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의 2가지다. 일본 내 4000여개 고교야구팀 중 단 32개교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이날 고시엔 구장에는 1만명에 가까운 관중이 몰렸다. 교토국제고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계 학교인 도쿄한국학교(도쿄), 백두학원(오사카), 금강학원(오사카)의 학생들과 재일교포 등 1000여명이 모였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1947년 재일교포들의 교육을 위해 교토조선중으로 개교한 뒤 고등교육으로 영역을 확대해온 한국계 국제학교다. 한국어·영어·일본어로 교육하며 1999년 야구부를 창단했다. 현재 재학생은 131명으로 일본인 93명, 재일교포(한국 국적) 37명이다. 야구부원 40명은 모두 일본 국적이지만 한국에 뿌리를 둔 학생들도 섞여 있다. 창단 직후에는 첫 정식 시합에서 0대 34로 대패하는 등 약체였지만 요즘은 2019년 춘계 지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교토의 야구 명문고로 거듭났다. 두산베어스의 신성현 선수도 이 학교 출신이다.
박경수 교토국제고 교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학교 운동장이 너무 좁아서 내야 연습만 가능했고 외야 연습은 다른 구장을 빌려서 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승리한 감독과 선수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편 NHK는 교토국제고 교가가 울려 퍼질 때 가사 중 ‘동해(東海)’를 일본어 ‘동쪽의 바다(東の海)’로 번역한 자막을 붙여 방송했다. NHK는 교토국제고 측에서 전달한 번역 가사를 썼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학교는 이를 부인했다. 현지 재일동포들은 “일본 우익 단체들이 한국어 교가에 대해 항의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과거에도 고교야구 지역대회에서 한국어 교가가 제창될 때 방송 화면에 동해를 세계(世界)로 내보내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