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뉴욕 지하철에서 20대 아시아계 여성이 60대 백인 남성에게 이른바 ‘오줌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3일(현지시간) 뉴욕 현지 아시아계 전문 정보사이트인 ‘아시안 피드’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1시30분쯤 뉴욕 지하철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아시아계 여성인 케시 첸(25)은 이날 뉴욕 메트로 지하철 F라인을 타고 퀸즈로 가고 있었다.
좌석에 앉아 있던 첸에게 한 60대 백인 남성이 다가와 갑자기 소변을 봤다.
첸은 “너무 당황스러워 ‘이거 정말이냐’(Are you serious)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고스란히 오줌 줄기를 맞았다고 아시안피드에 말했다.
이어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표정 변화 없이 그 자리에서 내 가방과 상의에 오줌을 쏘아댔다”며 “당시 같은 칸에 승객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아무도 제지하거나 나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남성은 볼일을 다 마치고 유유히 지하철에서 내려 사라졌다.
첸은 이 남성을 붙잡아 신고하려 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껴 휴대전화로 남성의 모습만 촬영했다.
첸은 남성이 상·하의 검은 옷차림에 검은색 스키 모자를 써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60대 백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남성의 상의에 미국 성조기 마크가 붙어있어 ‘극우 백인우월주의자’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첸은 경찰에 이 남성을 희롱죄로 고발했다. 뉴욕 경찰은 전단지를 배포하며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아직 가해 남성은 체포되지 않았다.
뉴욕서 주말 사이 아시아계 공격 5건
최근 미국에선 아시아계 여성 6명이 숨진 애틀랜타 참사를 비롯해 아시아계 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서만 주말 사이에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5건이나 보고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19일 지하철에 타고 있던 68세 스리랑카 남성이 다른 승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하면서 난데없이 남성의 머리를 가격했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해자를 2급 폭행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20일엔 60대 아시아계 남성이 길을 걷다가 이유 없이 얼굴을 맞았다. 21일엔 아시아계 여성 3명이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한 여성은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졌고, 다른 여성은 가해자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얼굴을 가격당했다.
또 다른 여성은 이날 아시아계 혐오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흑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여성은 “한 남자가 다가와 증오 반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빼앗더니 얼굴을 때렸다”고 증언했다. 이 남성은 22일 저녁 체포됐고, 증오범죄 및 증오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NYT는 “일련의 사건들은 애틀랜타 총격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아시아계가 겪어 온 인종차별 공포와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모든 사건을 증오범죄 혐의로 수사 중이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는 한편, 아시아계 거주지역에 경찰을 더 배치하고 증오범죄 신고를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계 혐오 멈춰라” 시위 확산
미 전역에선 인종에 따른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일 총격 사건이 발생한 애틀랜타를 비롯해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시애틀 등 미국 곳곳에서 각각 수백 명이 모여 증오 범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내의 주 의회 의사당 옆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아시아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는 이날 피츠버그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나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에모리대학을 방문해 “침묵하면 공범이 된다. 우리는 공범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걱정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그들은 공격당하고 비난당하고 희생양이 되고 괴롭힘을 당했다. 언어적·물리적 공격을 당하고 살해당했다”며 “이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도 “대통령과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에, 증오 범죄에, 차별에 맞서 언제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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