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친서, 러와 회담… 중국 ‘미국 동맹’ 맞서 ‘북·중·러’ 결속

입력 2021-03-23 17:27 수정 2021-03-23 17:53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3일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의 구이린에서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유럽연합(EU)의 제재 압박에 맞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동맹과 함께하는 대중 압박 전략을 본격화하자 중국은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 북한과 밀착하고 있다. 미·중 고위급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이후 이러한 대결 구도는 한층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 공동성명을 내 인권을 빌미 삼아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양국 외무장관은 중국 구이린에서 회담을 갖고 “주권 국가가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한다”며 “민주주의에 있어 표준 모델은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왕 부장은 특히 회담에서 “최근 며칠간 소수 서방 세력이 중국에 대한 흑색선전을 했다”며 “하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지어내 함부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EU가 22일(현지시간)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관련 인사들을 제재한 데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미국은 EU 등과 사전 조율을 거쳐 같은 날 동시에 제재를 가하는 방법으로 세를 과시했다. EU는 지난해 말 미국 반발에도 중국과 포괄적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했지만 인권은 또 다른 문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과 EU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즉각 유럽 측 인사 10명과 단체 4곳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또 친강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니콜라스 샤퓌 주중 EU 대사를 불러 제재 결정에 항의하며 맞규제 조치를 통보했다. 중국 외교부가 22일 밤늦게 홈페이지를 통해 제재 사실을 알린 것은 서방 국가들의 대중 압박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 중·러를 한데 묶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EU는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속 수감, 체첸공화국 내 인권 유린 등을 문제 삼아 러시아 인사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라브로프 장관은 EU가 러시아를 파멸시키려고 하는 만큼 더 이상 EU와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매체는 “중국과 러시아의 파트너십은 미국 패권을 견제하는 균형추”라며 “중·러 협력에 상한선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매체는 왕이 부장이 미·중 고위급 회담 때 미국 측 인사들과 하지 않았던 팔꿈치 인사를 라브로프 장관과는 했다며 두 사람간 친밀함을 부각했다. 또 중·러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구이린이 ‘귀중한 이웃’이라는 말과 발음이 같다면서 러시아 외교장관 방중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푸젠성 난핑에 있는 남송 시대의 유학자 주시의 사당에 들러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 관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구두 친서에서 새로운 정세 아래 북‧중 관계를 견고히 하며 발전시키자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역시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호응했다. 중국과 북한 매체는 두 지도자간 친서 교환 사실을 바로 공개했고 관련 내용도 상세히 소개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