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양육비 밀린 전 남편 신상 공개, 국민참여재판 ‘유죄’

입력 2021-03-23 14:15 수정 2021-03-23 14:23
기사와 무관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아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전 남편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대전지법 형사12부(유석철 부장판사)는 22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죄로 A씨(45)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18년 5월 조정 이혼한 후 2019년 3월부터 2개월간 양육비 총 400만원을 받지 못했다. A씨는 자신의 급여만으로 수험생인 두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지만 전남편 B씨는 이를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B씨의 신상정보를 제보했다.

A씨는 2019년 7월쯤 자신의 SNS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양육비를 주지 않는 사람을 공개한 온라인 사이트) 링크 등을 공유하며 “(전남편 B씨로부터)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겼다.

당시 배드파더스에는 B씨의 얼굴 사진과 신상이 공개돼 있었다.

B씨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웠던 2개월 동안 양육비 4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한꺼번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A씨를 고소했고, 사건을 살핀 검찰은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A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는 ‘피고인에게 피해자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와 ‘피고인이 사회 상규에 벗어나는 행위를 한 건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검찰은 “피해자는 그 몇 달 전부터 계속 양육비를 주다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딱 두 달 치를 제때 지급하지 못한 것”이라며 “신상정보와 사진이 모두 공개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고등학생인 자녀 두 명에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 피고인은 양육비 때문에 대출까지 받던 상황”이라며 “예컨대 성폭력 미투나 학교폭력 사건처럼 사실을 적시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게 과연 맞는지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맞섰다.

배심원 7명은 SNS에 B씨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공개한 것은 유죄, A씨가 B씨 지인 등에게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배드파더스 링크를 보낸 건 무죄로 평결했다.

재판부 역시 “SNS에 피해자 신상을 올린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A씨에게 벌금 100만원형을 내렸다.

한편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아버지, 어머니 등의 이름과 사진 등 신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양육비 지급 촉구 활동을 하며 아동 생존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18년부터 배드파더스와 함께 양육비 지급 촉구 활동을 해온 양육비해결총연합회의 이영 대표는 내일신문에 “사회 약자가 돼버린 한부모 가정의 가장에겐 신상공개 사이트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유일하게 기댈 힘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지키지 않아도 형사처벌 되지 않았고, 자녀 생존권을 위협하는 ‘학대와 방임’행위에 대해 고소해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는 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검찰 태도가 개탄스럽다”고 주장한 바 있다.

A씨는 정식 재판을 요청할 당시 “검찰이 구형한 벌금을 납부하고 끝내면 그만이겠지만, 이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많은 양육비 미지급 피해 가정의 공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