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크게 올리고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유지를 약속했지만 시장은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표 시중금리인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급등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주요 신흥국은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긴축 태세로 전환했다. 이런 환경은 가까스로 3000선을 유지하며 ‘고공 횡보’ 중인 코스피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22일 보고서에서 “최근 코스피는 3000선에서 두 달간 횡보하면서 시장의 피로도가 커지고 있다”며 “이 시기에 조정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유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오히려 경기가 너무 좋아서 생기는 문제, 즉 ‘긴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회복 국면에서는 중앙은행이 그동안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풀었던 유동성을 회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증시를 누른다는 얘기다. 국내 증시는 단기간 가파른 상승으로 ‘너무 오른 것 아니냐’는 심리가 커진 만큼 인플레이션 징후와 금리 상승이 주는 압박감이 더욱 크다. 지난해 3월 19일 1457.64까지 급락했던 코스피는 지난 1년간 110% 가까이 상승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투자자들이 느끼는 심정은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흔들 다리를 거닐고 있는 상황과 흡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연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지만 다음날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급등하며 1.7%대로 올라섰다. 지난해 1월 23일 이후 처음이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중금리 안정을 위해)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 않은 데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듯한 신호를 보내면서 미 국채 10년물이 1.75%를 터치했다”며 “(19일에는) 은행들의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완화 연장을 이달 말로 종료키로 하면서 다시 1.72%로 상승 마감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SLR 완화 조치 종료로 은행들의 국채 매도 압력이 당분간 높아질 것”이라며 “시장과 연준의 긴장감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FOMC 회의 후 브라질(17일) 터키(18일) 러시아(19일) 등 신흥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다. 브라질은 연초 물가상승 부담을 이유로 금리를 2%에서 2.75%로 올리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터키는 17%에서 19%로 2% 포인트나 인상했다. 이 결정 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를 임명 4개월 만에 경질했다. 러시아는 4.25%에서 4.5%로 올리며 2018년 12월 이후 첫 인상을 단행했다.
일본은 지난 19일 10년물 국채금리 변동 허용 범위를 ±0.20%에서 ±0.25%로 확대키로 했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일본 국채는 금리가 가장 안 움직일 것 같은 채권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기준점을 제시해왔다”며 “최근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의 규모도 크게 감소하는 등 흔들림이 있었다는 점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금리 상승 우려 영향으로 최근 국내 주식시장도 거래대금이 감소하는 등 활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22일까지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15조2312억원이다. 지난 1월(26조4778억원), 2월(19조954억원)과 비교해 각각 42.4%, 20.2%가량 감소했다. 이달 개인의 일평균 순매수 금액은 3051억원으로 전월(4687억원) 대비 약 35% 줄었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수 수익률 측면에서 낙폭이 큰 건 아니지만 횡보 기간이 길어지면서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완연하게 감소하는 흐름”이라며 “보통 거래대금의 변화는 증시의 변곡점과 비슷한 시점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채 10년물 1.75% 터치, 증시는 무너질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불안심리가 커질 수 있지만 추세 전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물가와 금리만 놓고 보면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GDP(국내총생산) 성장률과 이익 모멘텀 등을 대비해서 보면 얘기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경제가 더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와 금리 상승이 증시의 중장기 추세를 훼손하지는 않으리라는 설명이다.
그는 “투자자들의 관심과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세 결정 변수는 펀더멘털”이라며 “강력한 펀더멘털 모멘텀이 물가·금리 부담과 리스크를 넘어설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달러당 1140원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꾸준히 하락해 1120원 후반을 횡보 중이다. 원화가 달러 대비 강세라는 의미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길게 보면 3월 FOMC에서 중장기 연준의 완화적인 방향성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달러지수의 하락과 원화 강세를 지지할 전망”이라며 “다만 4월에 예정된 외국인 배당 지급의 계절성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원화의 강세가 빠르게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조민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