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FBI 北사업가 구금에 “北 대단히 심각히 볼 것”

입력 2021-03-23 00:10
말레이시아와 외교 관계를 끊은 북한의 김유성 대사대리가 21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을 철수하기 전 정문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사업가 문철명씨가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 전격 송환되면서 북한의 대외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는 대북 제재를 어길 경우 미국으로 넘겨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북한 당국은 문씨의 미국 송환 문제를 심각하게 볼 것이다”이라며 “해외에서 북한으로 사치품 등을 보내다 체포될 경우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북 제재 위반 행위가 적발될 경우 이전처럼 강제 추방으로 그치는 게 아닌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는 길이 열렸다는 얘기다.

말레이시아와 외교 관계를 끊은 북한의 외교관과 직원들이 21일(현지시간) 버스를 타고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AP통신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수사국(FBI)가 대북 제재 위반 혐의 등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받은 문씨를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AP통신은 문씨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될 최초의 북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문씨는 고가의 시계와 술 등을 북한에 보내고 유령회사를 통해 자금세탁 등을 한 혐의를 받는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2270호 등에 따라 고급 시계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북한에 수출할 수 없다.

태 의원은 “북한 당국은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북 제재를 위반한 인물들을 조용히 북한으로 불러들일 것”이라며 “대신 북한 국적이 아닌 이들을 내세워 불법거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도 “현재 북한 당국이 외화를 벌 방법은 불법행위밖에 없다”며 “코로나19 상황인 만큼 우선 사치품 조달 등 행위를 은폐하거나 자제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각 공관에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당국으로선 해외로부터의 사치품 및 외화 유입이 여전히 중요한데다 코로나19 차단을 이유로 당장 이들의 귀국을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이 미국의 접촉 제안에 응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지난 2월 중순 북한에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의 무응답으로 성사되지 않은 상태다.

고 전 부원장은 “이번 사건으로 북한 당국의 상황이 굉장히 난처해졌고, 이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제안에 응하면서 기회가 될 때 문씨 구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문씨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북·미가 서로의 의사를 타진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태 의원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문씨를 미국에 송환하기 전까지 북한은 미국에 중재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며 “이미 문씨가 미국으로 넘겨진 만큼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