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 전기차 시장에서 보조금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을 늘리는 가운데 정부와 자동차 업계, 완성차 기업과 소비자 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2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영국은 5만 파운드 미만 전기차에 3500파운드를 지급하던 기존 보조금 정책을 지난 18일부터 3만5000파운드 미만 전기차에 2500파운드를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저가형 차량 보급을 통해 전기차 숫자를 늘린다는 차원에서다.
이에 영국 자동차산업협회는 “EV(전기차) 보조금 삭감은 잘못된 선택”이라며 “배터리 기술이 내연기관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EV를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조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전기차 초기 확산기에 고가 차량의 가격을 낮추려면 보조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다.
각국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과 기한 등을 두고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정된 전기차 보조금으로 저가형 모델을 지원해 전기차의 숫자를 최대한으로 늘리려는 게 주요국들의 공통적인 움직임이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6000만원 미만 전기차에 보조금 100%를, 6000만원 초과 9000만원 미만 전기차에 보조금 50%를 지급한다. 9000만원 이상인 경우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보조금 확대와 지속적인 지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을 둘러싼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연간 보조금은 한정돼 있고, 모두 소진되면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줄 수 없어서다. 완성차 업체들은 연초인데도 차량 가격 인하를 감수하며 전기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시장에선 테슬라가 모델3 일부 트림의 가격 인하 카드를 꺼냈다. 롱레인지 트림을 5999만원에 책정해 보조금 100% 지급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사전계약 중인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는 5000만원대에 가격이 책정됐다.
같은 이유로 전기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눈치 싸움을 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이 소진되기 전에 차량을 빨리 인도받아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다. 지난달 국내에서 현대차 아이오닉5의 사전계약이 일주일 만에 3만5000여대를 돌파할 정도로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아이오닉5에 수요가 크게 몰리면서 다른 전기차를 구매해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달 말 공개 예정인 기아 EV6의 사전계약을 진행하겠다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국내 출시 예정인 볼보나 BMW, 폭스바겐 등 수입차 업체의 전기차를 사려는 소비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