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직역수호는 후배들 사다리 차기에서 시작하나.’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학생이 들고 있던 팻말에 적힌 문구다. 법전원 원우협의회는 이날부터 한 달 간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입구에 근조 화환을 세우고 항의 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까닭은 변협이 변호사시험(변시) 합격 인원을 1200명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탓이다. 변시 합격자 수는 2012년 1회 1451명을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1768명에 이르렀다. 변협 주장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합격자 수를 3분의 1 정도 줄여야 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변협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합격자에 대한 변협 연수 과정이 실효성을 잃고 요식행위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변시 합격자는 6개월 동안 법무법인이나 정부기관 등의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실무수습 교육을 이수하거나 변협에서 실무연수를 받아야 정식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이 중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실무수습을 받는 인원은 연간 900~1000명 수준이고, 나머지 500~700명 정도의 합격자들은 변협 연수를 받아왔다.
문제는 변협이 실질적으로 소화 가능한 연수 인원은 200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합격자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이다. 근거는 합격자를 1대 1로 ‘도제식 교육’을 할 수 있는 관리지도관(변호사) 숫자가 200명 전후 수준이 한계치라는 것이다. 최근 5년간 관리지도관 수는 140~200여명 수준이었다. 한 관리지도관이 다수의 수습 변호사를 맡고, 현장 중심이 아니라 강의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는 현 연수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변협 측 주장이다. 정부가 ‘수익자부담 원칙’을 이유로 지난해부터 연수 보조금 지원을 전면 중단한 점도 합격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논거로 쓰이고 있다.
법전원 학생들은 ‘끼워 맞추기’식 논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전원 원우협의회 소속의 한 학생은 22일 국민일보 취재에 “변협은 줄곧 변시 합격생을 1000명 수준으로 줄이라는 얘기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실무수습 교육을 명분으로 가져 온 것”이라고 답했다. 변협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도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도가 아니라 불태우는 것”이라며 “‘1200명론’의 근거가 불명확하고, 수험생들의 신뢰 보호와 예측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변협도 할 말은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협 관계자는 “로스쿨 도입 초기에는 변호사가 1만명이었는데, 10년 사이에 3만명을 넘어섰다”며 변호사 수가 근래 폭증한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급변한 시장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수습 변호사들이 현재의 변협 연수처럼 단순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법무법인 등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아 질을 담보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받으면서 일하도록 하겠다는 게 문제 있는 주장이냐”고 반문했다.
김현 전 변협회장도 “현재 신규 법조 인력은 과잉 공급상태”라며 “오히려 1200명이 아니라 1000명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애당초 법전원의 정원이 너무 많다”며 “법전원이 25개나 있을 필요가 없고, 합격률이 낮은 곳은 다른 곳과 합병을 하든지 해서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제10회 변시 합격자는 다음 달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합격자 수는 법무부 산하의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법무부 차관, 법학교수 5명, 법관 2명, 법무부 공무원 2명(검사 1명 포함), 변협회장 추천 변호사 3명, 기타 2명 등 15명으로 이뤄져 있다. 출석위원 과반이 의결 정족수라 변협의 일방적인 독주는 불가능하다.
다만 변협이 앞서 밝힌 입장대로 연수 인원을 200명 밑으로 한정하는 ‘보이콧’에 들어갈 경우 변시 합격자들 사이에는 큰 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법전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협이 직역수호를 한다면서 법전원생 탄압을 1순위로 삼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금 합격자 수를 100~200명 줄인다고 업황이 좋아지느냐”며 “정부와 협의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을 하는 게 변협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신용일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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