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 새 ‘화약고’…FBI, 대북제재 위반 북한 남성 구금

입력 2021-03-22 06:13 수정 2021-03-22 09:44
FBI, 말레이시아서 인도받은 북한인 문철명 구금
대북제재 위반과 자금세탁 등 혐의
AP통신 “미국서 재판받을 첫 북한 사람”
문씨 “정치적 목적…공정한 재판받지 못할 우려”

김영수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21일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에서 버스로 짐 가방을 옮기고 있다. 북한대사관 직원과 가족 등 북한인 30여명은 이날 오후 중국 상하이행 여객기를 타고 말레이시아에서 모두 철수했다. AP뉴시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대북 제재를 위반한 혐의 등으로 말레이시아로부터 인도받은 북한 국적의 문철명(56)씨를 20일(현지시간) 구금했다고 AP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문씨는 유엔의 대북 제재를 위반해 시계와 술 등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고, 유령회사를 통해 돈 세탁을 했으며, 불법 선적을 지원하기 위해 위조서류를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은 말레이시아 대법원이 문씨에 대한 미국 인도 결정을 내리자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AP통신은 “북한 남성이 (대북) 제재 사건으로 미국에 인도됐다”면서 “그(문씨)는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될 최초의 북한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문씨가 미국 내에서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경우 북·미 관계의 새로운 화약고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는 모두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2월 중순 이후 북한에 외교적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문씨의 변호인은 문씨가 미국 내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문씨 측은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것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에 압력을 증대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과 문씨는 “터무니없는 날조이고 완전한 모략”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AP통신은 자체적으로 입수한 문서들을 인용해 문씨가 워싱턴에 있는 FBI 건물에 구금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는 이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고 AP통신은 덧붙였다.

워싱턴 연방법원의 판사는 2019년 5월 2일 자금세탁과 공모 등 혐의로 문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말레이시아에서 10년 정도 거주했던 문씨는 미국이 인도 요청을 한 직후였던 2019년 5월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됐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같은 해 12월 미국 인도를 승인했으나 문씨 측은 신병 인도 거부를 요청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이달 초 문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인도를 결정했다.

북한은 문씨의 미국 내 구금과 향후 재판에 대해 강력 반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AP통신은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에 북·미 대화 교착 상태에 대해 압력을 증대하면서 북·미 사이의 적대감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가 새로운 대화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돌발변수로 등장한 문씨 문제는 북·미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문씨 인도와 관련해 “이번 사건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적대시 책동과 말레이시아 당국의 친미 굴욕이 빚어낸 직접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말레이시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단교를 선언하자 말레이시아 정부도 같은 날 오후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48시간 이내 떠날 것을 명령하면서 맞받아쳤다. 이에 따라 북한대사관 직원과 가족 등 북한인 30여명은 21일 오후 중국 상하이행 여객기를 타고 말레이시아에서 모두 철수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