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핫스폿에서 마스크 쓰고 성화 봉송…“해외 무관중 능사 아냐”

입력 2021-03-22 06:05
EPA연합뉴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 해외 관중들을 받지 않겠다는 주최 측의 결정이 있었지만, 당장 성화 봉송부터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못할 거라는 일본 현지 우려가 크다. 여전히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19는 물론 일본 후쿠시마현의 방사능 오염 문제 있어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지적이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와 도쿄도(東京都),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20일 저녁 온라인 5자 회의를 열고 올해 7월 개최되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 해외 관중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식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현재 일본 정부가 외국인 신규 입국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도쿄올림픽 계기 일본 방문객을 받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 올림픽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해외에서 판매된 대회 티켓 63만장에 대한 환불 절차가 진행되며, 국내 관중의 경우에도 경기장 수용인원의 50% 수준에서 입장시키는 방안이 모색될 전망이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정권을 부양한다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겼다. 21일 마이니치신문과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關西)대 명예교수(이론경제학)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해외 관중을 받지 않고 국내 관중을 50%로 제한했을 때 경제적 손실은 1조6258억엔(약 16조8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던 관광 업계 등의 손실이 불가피해 스가 정권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걸로 보인다.

AFP연합뉴스

당장 25일 시작되는 성화 봉송 행사에서부터 스가 정권은 시험대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일간 겐다이는 21일 보도에서 “스가 총리, 고이케 도쿄지사 등은 성화 봉송이 전국을 돌기 시작하면 올림픽 개최 반대론도 약화될 걸로 보고 있겠지만, 성화 봉송 주자 중 코로나19 감염자나 밀접접촉자가 나와 릴레이가 끊긴다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은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위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원전 폭발 사고의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福島)현의 축구 훈련 시설인 ‘제이(J)빌리지’에서 성화 봉송 시작을 알리는 무관중 행사를 준비했다. 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여자축구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한 일본의 ‘나데시코 재팬’이 마스크를 쓰고 성화 봉송에 나설 첫 주자로 선정됐지만, 행사 전부터 문제가 많다. ‘나데시코 재팬’ 선수들 중 해외 구단에서 활약하는 선수 4명이 코로나19로 인한 출입국 제한 등을 이유로 성화 봉송을 포기한 것.

게다가 J빌리지 일대는 방사선량이 높은 ‘핫스폿’으로 2019년 분류된 바 있어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도 많다. 일간 겐다이는 “J빌리지는 원전 사고 직후 수습 작업을 위한 숙박제염시설이나 차량의 대기 장소로 활용됐다. 방호복을 입은 수습인원들로 붐볐고,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기계가 울리고 있었던 곳이다. 방송에선 이런 사실도 언급할 것인가”라며 “(성화 봉송) 방송에서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귀환 곤란 구역은 물론 방사능 제염용으로 쓰인 흙무더기가 쌓여있는 모습도 중계 화면에 나가지 않게 이동시켰다고 한다”며 비판했다.

일본에선 이미 유명 록밴드인 ‘TOKIO’ 등 여러 인사들이 성화 봉송을 포기했다. TOKIO는 1995년부터 ‘DASH VILLAGE’라는 새로운 마을을 직접 일구는 ‘더! 철완! DASH!’ 콘텐츠를 선보였고, 이 콘텐츠가 국민예능이 됐을 정도로 사랑을 받은 그룹이다. TOKIO는 스케줄을 이유로 성화 봉송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간 겐다이는 “DASH VILLAGE가 위치한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 사람들이 아직 피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흥 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들떠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