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와 중국 견제, 한·미·일 공조 압박을 노골화하면서 후속대책을 세워야 하는 정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극심해지는 미·중 갈등 속 ‘전략적 모호성’은 이제 수명을 다하고 있고,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을 위해 미국이 한국의 인권의식마저 정조준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이와 관련한 장·단기적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미 2+2 회담에서 중국 인권 문제에 관한 언급을 피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19일(현지시간)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예상치 못하게 부각됐다. 한국의 의중을 놓고 양측이 “중국 조처에 대한 우려를 (동맹국으로부터) 듣고 있다” “미국만의 시각이 아닌가”라며 기싸움을 벌여 한·미 2+2 회담 공동성명에 중국이 언급되지 않은 부분을 중국이 파고든 것이란 해석이 제기됐다.
정부는 미·중의 ‘줄서기’ 요구는 없다고 하지만 양측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강도가 세지면서 한국 외교에 부담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21일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을 보지 못하는 등 우리에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지만 미국으로선 북핵이 최우선 과제도 아니고 한·중 관계가 나빠지는 게 자국에 손해도 아니어서 압박을 지속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압박은 한·일 관계 개선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일 군사교류 재개를 목표로 안보부문에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조치를 가져오지 않으면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협력이 실현될 진 불확실하다.
2+2 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은 북한 인권 부문에서 우리 정부를 옥죄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연일 북한 인권을 얘기한 것은 우리 정부의 동참을 요구한 것”이라며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이란 표현 자체가 이견을 확인한 만큼 조율할 사안이 많고, 한국이 미국 기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당장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을 언급하며 우회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조만간 발간할 ‘2020 한국 인권보고서’에 통일부가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설립을 취소한 사실이 적시하며 ‘북한 인권단체에 대한 억압’이란 시각이 있다고 기술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전단금지법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을 대하는 한·미의 다른 행보는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한 기조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