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역사적 회담” 자화자찬, 양제츠·왕이 ‘앵커리지 어록’ 담긴 티셔츠 출시

입력 2021-03-21 16:43 수정 2021-03-21 16:57
중국의 양제츠(오른쪽)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1박2일 미중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자국 매체와 인터뷰하고 있다. 미중은 세 차례 회담을 가졌지만 공동 발표문을 내지 못하고 회담을 끝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난 미·중 고위급 회담을 두고 “중국 외교사에 기록될 역사적 회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중국 대표단이 미국에 조금도 밀리지 않고 할 말 다 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모습이다. 중국에선 회담에 참석한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앵커리지 어록’이 새겨진 티셔츠가 출시될 정도로 분위기가 뜨겁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20일 사설 등을 통해 “이번 회담은 미·중 관계가 갈림길에 서 있는 중요한 시기에 열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알래스카에서의 회담은 그 과정에서 역사적 이정표로 여겨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신장, 홍콩, 대만 등 핵심 이익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19일(현지시간) 미·중 고위급 회담 종료 후 인터뷰에서 “미국은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 민족의 존엄, 정당한 권익을 지키려는 중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미국은 중국을 억지하는 데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중국을 무너뜨리는 것은 환상이고 중국을 겁주려는 건 더 큰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 위상과 체제 안전은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국의 궁극적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1901년 신축 조약 체결 당시와 2021년 미중 고위급 회담을 비교한 사진. 중국 위챗 캡처

중국 SNS에는 미·중 고위급 회담을 보고 자긍심을 느꼈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일부 네티즌은 120년 전인 1901년 열강이 청나라 정부와 맺은 불평등 조약인 ‘신축 조약’(베이징 의정서) 체결 당시 사진과 미·중 고위급 회담 사진을 비교하며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은 신축 조약 체결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외국 군대의 베이징 주둔을 받아들였다. 중국에선 주권을 잃고 나라를 욕보인 치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중국 온라인쇼핑몰인 티몰과 핀둬둬 등에는 ‘내정 간섭 중단’ ‘미국은 말할 자격이 없다’는 등의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와 휴대폰 케이스 등이 판매되고 있다. 양 정치국원과 왕 부장이 고위급 회담에서 미 대표단의 중국 비판 발언을 되받아치며 한 말이다. 중국 포털사이트인 웨이보에 올라온 ‘미국은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우리와 대화할 자격이 없다’는 글에는 150만건 이상의 ‘좋아요’ 댓글이 달렸다. 미·중은 회담 첫날인 18일(현지시간) 모두 발언에서 1시간 넘게 공개 설전을 벌였다.

중국 온라인쇼핑몰에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미중 고위급 회담 발언이 새겨진 티셔츠 등이 판매되고 있다. 타오바오 홈페이지 캡처

다만 이러한 설전은 국내외 청중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에선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반중 기조에 있어서만큼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중국은 힘을 과시하는 ‘늑대 외교’를 미국 앞이라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왕융 베이징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양측은 국내 정치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비난에 직면해 힘을 보여줘야 했다”며 “양측은 후속 협상에서는 더 실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