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서는 주말 내내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를 멈춰달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틀랜타 총기난사 사건 이후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와 차별에 침묵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애틀랜타를 비롯해 뉴욕과 시카고,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20일(현지시간)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애틀랜타 주 의회 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는 한인들을 포함한 시민과 활동가 등 수백 명이 모였다. 이들은 총격사건 피의자 로버트 앨런 롱(21)의 범행으로 숨진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아시아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집회에는 한국계 여배우 샌드라 오가 깜짝 등장해 연사로 나섰다. 그는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돼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지역사회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매와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경찰이 용의자인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21)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성 중독’ 가능성을 제기한 데 대한 분노도 이어졌다. 사건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미국 경찰의 시도가 아시아계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킨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음악인 리와그 딕슨은 AP통신에 “내가 성매매 종사자이거나, 필리핀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난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내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나이가 많았던 상사는 성 관계에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한국계 일라인 김 명예교수는 “미군이 아시아 지역에 주둔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아시아 주둔 미군은 오랫동안 불법적인 성매매 논란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럿거스대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지난해 12월 텔레그램 등에서의 아시아계에 대한 모욕이 이전 11개월의 평균과 비교할 때 65% 급증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총격 사건 직후 아시아계를 비방하는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4%는 “코로나19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지난해 봄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분위기가 증가하기 시작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2차 확산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