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피해여성이 문제를 제기한 뒤 주변으로부터 겪는 2차 피해가 여전히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양태는 말과 신체접촉부터 몰카 설치까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21일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이 낸 ‘2020년 주요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 197건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은 113건(57%)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58건), 부당 해고(14건), 기타 노동사안(9건), 성차별적 조직문화(2건), 임금체불(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상담 사례를 보면 카카오톡 프로필에 사진을 올리자 “몸매가 좋다” “남자 직원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거나 약국에 가는 직원에게 “콘돔 사러 가느냐”고 묻는 등 말로 하는 성희롱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마우스 위로 손을 잡는다’ ‘자리가 많은데 굳이 옆에 붙어 어깨가 닿게 한다’ ‘계속 밀착하고 뒤에서 끌어안는다’ 등 신체적 성추행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사장이 화장실에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자가 공개된 명령어에 동료를 성희롱하는 내용을 넣는 등 여러 모습을 띤다는 게 여성민우회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를 겪는다는 것이다. 동료나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왜 바로 신고를 안 했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되레 핀잔을 주거나 “가해자는 말이 다르니 우리는 판단 못 한다” “생각이 다르니 전 직원에게 공개해 의견을 듣겠다” 등으로 회피하는 사례도 많았다.
‘상사들이 차례로 불러서 괜히 일 키우지 마라’고 했다거나 ‘외부에 알려지면 우리한테 안 좋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회유하고 덮으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승진에서 배제하고 부당 전보, 부당 징계하거나 퇴사를 강요하는 등 고용상 불이익을 준 경우까지 있었다.
여성민우회 측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노동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며 “가장 큰 책임은 회사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감독관은 피해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와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민우회는 “성희롱과 괴롭힘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회사 구성원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